제주어 칼럼_강영봉 제주어연구소 소장
모여 있는 여러 사람 가운데 제주 사람을 골라내는 방법으로는 어떤 것이 있을까.
얼굴 모양, 두 눈썹 사이의 간격, 코의 높이, 옷매무새 등등. 얼굴 생김은 거의 비슷하니 제주 사람을 찾아내기 어렵다. 두 눈썹 사이의 간격, 코의 높이는 정확하게 측정하는 것이 불가능하니 기준이 되지 못한다. 옷매무새도 서로 비슷비슷하니 변별력으로 작용하지 못한다. 결국은 ‘제주어’로 말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이 바로 제주 사람이다.
‘제주어로 말하는 사람’이 ‘제주 사람’이라고 한다면 ‘제주어’는 “제주 사람들의 생각이나 감정을 나타내는 데 쓰는, 전래적인 언어”라 할 수 있다. ‘제주 사람의 생각이나 감정’은 조상 대대로 이어져 내려온 전통이며 문화다. 누대로 켜켜이 쌓인 제주정신의 축적이며, 그것이 밖으로 나타난 것이 바로 ‘제주어’다.
‘제주어’라는 용어는 1913년 일본인 학자 오구라 신페이[小倉進平]가 <제주도방언>이라는 논문에서 서울말인 ‘경성어’[지금의 표준어]에 대립하는 개념으로 ‘제주어’를 사용한 바 있다. 이후 나비 학자 석주명도 1947년 ≪제주도방언집≫을 내면서 ‘제주어’, ‘표준어’라는 항목 아래 서로 짝이 되는 어휘를 나열하였다. ≪제주도방언집≫에 쓰인 ‘제주어’도 오구라 신페이의 ‘제주어’라는 용어를 차용해서 쓴 것이 분명하다. ≪제주도방언집≫의 참고 문헌에서 오구라 신페이의 <제주도방언>이 제시된 것을 확인할 수 있기 때문이다.
제주 사람이 쓰는 언어를 ‘제주어’라고 한다면 ‘제주방언’은 쓰지 말아야 할 용어인가.
국어 방언학에서 ‘방언(方言)’은 ①중국에 대한 우리나라의 언어[고려방언], ②한국어를 형성하고 있는 하위 언어 체계[동남방언, 동북방언, 서남방언, 서북방언, 중부방언, 제주방언], ③표준어에 대립되는 개념[쓰지 말아야 할 교양 없는 언어]이다. 이 모두의 개념을 하나로 아우르면 ‘방언’은, ‘중앙에서 벗어난 변두리의 하위 언어’로 귀결된다. ‘○○방언’이라 하면 변두리 언어라는 ‘주변성, 하위성’에서 벗어날 수가 없다. 이 ‘주변성’, ‘하위성’이라는 개념은 중앙 중심의 시선에서는 타당할지 모르나 시선을 옮겨 각 지역에다 중심을 두면 시야는 달라질 수밖에 없다. ‘제주방언’인 경우, 제주도를 중심에 놓고 본다면 제주 사람들이 쓰는 말은 ‘제주 지역에서 쓰이는 변두리 하위 언어’가 아니라 ‘제주 지역에서 쓰이는 중심 언어’로 바뀌게 된다. 이때 ‘제주방언’을 대신할 용어가 필요한데, 그것이 오구라 신페이가 썼던 ‘제주어’라는 용어를 빌려 오게 된 것이다.
국어 방언학에서 우리나라 방언 구획은 6개의 대방언권으로 나눈다. 6개의 대방언권은 ‘동남방언, 동북방언, 서남방언, 서북방언, 중부방언, 제주방언’이 그것으로, 모두 지역 이름이 붙어 있다. 지역 명칭에 따라 ‘동남방언’은 경상도 중심, ‘동북방언’은 함경도 중심, ‘서남방언’은 전라도 중심, ‘서북방언’은 평안도 중심, ‘중부방언’은 경기도⋅충청도⋅강원도 중심, ‘제주방언’은 제주도 중심의 대방언권이 된다. 우리나라 6개 대방언권을 제시할 때 ‘동남방언, 동북방언, 서남방언, 서북방언, 중부방언, 제주방언’이라 하지 않고, ‘제주방언’을 ‘제주어’로 바꿔서, ‘동남방언, 동북방언, 서남방언, 서북방언, 중부방언, 제주어’라고 말할 수는 없다.
결국 ‘제주방언’은 한국 방언학계를 비롯한 학술적인 측면에서의 명칭이고, ‘제주어’는 제주도에 초점을 두고, “제주 사람들의 생각이나 감정을 나타내는 데 쓰는, 전래적인 언어”라 정의할 수 있다. 이런 점에서 볼 때 ‘제주방언’과 ‘제주어’는 거의 같은 개념을 지닌 명칭으로 봐도 크게 무리가 없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