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어 칼럼②] 강영봉 제주어연구소 소장
가끔 외지인들로부터 제주어는 알아들을 수 없다, 신기해서 외국에 온 느낌이 든다는 말을 듣는다. 이 말은 ‘제주어는 어렵다’는 말과도 같다. 정말이지 제주어는 어려운 말일까.
17세기 중엽 제주 목사를 지낸 이원진(李元鎭)의 ≪탐라지≫(1653)에, “제주 토박이가 쓰는 말은 어렵다. (①)을 ‘고지’, (②)을 ‘손콥’, (③)을 ‘굴레’, (④)를 ‘녹대’, (⑤)를 ‘가달’이라고 한다.” 등 7개의 어휘를 제시하고 있다. 아마 독자들은 ②정도는 얼른 ‘손톱’이라 말할 수 있지만 그 나머지는 조금 망설이게 될 것이다. 특히 ④번과 ⑤번에 이르면 도통 무슨 말인지 감 잡기도 어려울 것이다. 아마 ‘가달’이라는 어휘는 ‘다리’ 정도는 말할 수도 있겠지만, 이에 대응하는 정확한 어휘하고는 거리가 멀다. ①②③ 등의 괄호 속에 들어갈 어휘는 차례로 ‘숲, 손톱, 입, 굴레, 고삐’에 해당한다. 특히 ‘④녹대’와 ‘⑤가달’은 몽골어를 차용한 어휘이기 때문에 알기는 더욱 어렵다[‘녹대’는 ‘소나 말을 부리기 위하여 입에서부터 목까지 얽은 줄’이며, ‘가달’은 ‘말을 탔을 때 말의 방향을 좌우로 돌리기 위하여 손에 쥐고 있는 긴 고삐’를 말한다.]. 제주어가 어렵다는 기록은 15세기부터 나타난다. 전국 지리지인 ≪동국여지승람≫(1481) ‘제주목’ 풍속조에, “이어간삽(俚語艱澁)”이라 하여 ‘제주 토박이들이 쓰는 말은 어렵다.’라 기록하고 있다. 특히 ‘이어간삽’이라는 기록이 ≪동국여지승람≫ 50권 가운데 언어에 대한 유일한 예이고 보면 그 당시부터 제주어가 유별했음을 짐작할 수 있다.
제주어가 어려워진 까닭은 어디에 있을까.
우선 ‘제주바당’이라 부르는 제주해협(濟州海峽)에 있다.
‘제주바당’은 추자도와 제주도(濟州島) 사이의 바다로, 물살이 무척 드세고 거칠다. 16세기 임제(林悌)는 제주 목사 임진(林晉)의 아들로, ‘아빠 찬스’를 이용하여 4개월 동안 제주도를 돌아보고 난 후 여행기 ≪남명소승≫을 남겼다. 이에 따르면 임제 일행이 ‘제주바당’을 건너는 상황을 “뱃장에 들어가 누우니 마치 그네 위에 있는 것 같다.”라 표현했다.
또 제주도 배경의 고전소설 <배비장전>에서는 ‘제주바당’을 “추자도 지나니 집채 같은 큰 물결이 바위를 쾅쾅 부수어 내며 바람 따라 여기서도 우르릉 꽐꽐 저기서도 왈랑왈랑 창나무 꺾어져 용총줄 마룻대 동강 고물이 번 듯 이물로 숙어지고 이물이 번 듯 고물로 기울어져 덤벙뛰뚱 조리질하니 무인절도 난파선이 가이없”는 곳으로 표현하고 있다.
‘그네 위에 있는 것 같다’거나 ‘조리질하니’라는 데서 ‘제주바당’의 드센 위용을 짐작할 수 있다. 그러기에 사람들은 ‘제주바당’을 건너는 일이 두려웠고, 사람들이 제주도로 들어오지 못하니 그들이 쓰는 새로운 말 또한 들어올 수 없었다. 새 말이 들어오지 못하니 제주 사람들은 어쩔 수 없이 예전에 쓰던 옛말을 사용할 수밖에는 없었다. 새 말을 쓰는 사람의 입장에서 보면 제주 사람들이 쓰는 옛말을 알아들을 수 없으니 제주어는 낯설고 어려운 것이다.
어려워진 또 다른 이유는 구로시오해류[黑潮]의 영향이다. 구로시오해류는 필리핀 동쪽 해역에서 발생해 황해로, 제주도와 남해안 사이로, 일본 열도 남쪽으로 흐른다. 황해로 들어가는 물살은 대륙으로 물길이 막혔으니 물발이 느리고, 일본 열도 남쪽으로 흐르는 해류는 장애물이 없으니 재빠르게 지나간다. 그러나 제주도와 남해안 사이를 통과하는 해류는 좁은 통로를 통과해야 하니 물살이 드셀 수밖에 없다. 거센 물살이 또한 배의 항해를 가로막는 것이다.
이렇게 본다면 제주어는 ‘바람과 물살이 가른 언어’가 되고, 결과적으로 ‘제주 사람들이 쓰는 언어는 어렵다.’는 말로 귀결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