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밀 타케 신부 탄생 150주년 기념
'타케의 정원' 위한 전시회·포럼 등 열어
온주밀감·왕벚꽃나무·구상나무 등 유산
선교사 업적 알리고 식물주권 되찾아야
한국순교복자성직수도회 면형의 집에서는 에밀 타케 신부의 업적을 널리 알리고, 지역 사회와의 소통을 강화하기 위해 3층 전시실에서 지난 10월 1일부터 타케 신부의 표본 전시를 볼 수 있는 ‘타케의 정원’展을 개최 중이다. 이번 전시에서는 서귀포 사목 시절 18통 서한, 편지 등 활용한 에밀 타케의 생애와 사목 활동에 대한 사진과 문서 자료, 영상물을 전시 중이며 채집 식물표본 30여점을 볼 수 있다.
에밀 타케(Emile Joseph Taquet, 1873~1952)신부는 1898년 1월 파리외방전교회 소속으로 한국 선교를 위해 왔다.
특히, 13년이라는 제주 사목 기간 중 그의 업적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그가 제주에 있던 1901년은 신축 교안(이재수의 난)의 혼란이 있던 위험한 시기였다. 외국의 선교사에게 제주민란과 그 민란의 피해를 입은 제주민은 안타까운 광경이었다.
1902년 서귀포 하논본당 제3대 주임신부로 부임한 타케 신부는 부임 후, 한라산이 잘 보이고 하논 분화구에서 가까운 서홍동 홍로(현 면형의 집)터로 성당을 옮겼다. 홍로로 이전한 뒤 타케 신부는 1915년까지 13년간 홍로본당을 중심으로 교세를 확장하면서 제주교구의 초석을 마련했다. 그는 지역 사회와 함께하기 위한 사목에 혼신의 노력을 다했고, 특히 식물채집에 열정을 받쳤다.
타케 신부는 유명한 식물학자이며 당시 일본에서 활동한 파리외방전교회 포리 신부(1847~1915)를 만나 선교 활동을 위한 자금 마련에 식물 채집이 도움이 된다는 것을 알게 된다. 그는 포리 신부로부터 식물 채집 방법에 대해 배운 후, 본격적으로 제주 식물 채집에 들어갔다.
당시 제주 지역민들의 열악한 경제적 상황을 타개하고자 에밀 타케 신부는 일본에서 온주 밀감 14그루를 들여왔고, 이는 오늘날 제주 감귤 산업의 토대를 마련했다. 중국 온주 지방의 밀감이 일본으로 건너갔고, 타케 신부에 의해 다시 제주로 들여오게 됐고, 기후가 잘 맞아 수확·보급이 될 수 있었다. 한때 대학나무로도 불린 ‘온주밀감’이 현재까지 이어져 제주를 대표하는 과일 ‘감귤’이 꽃을 피운 계기가 된 것이다.
또한 크리스마스트리로 알려진 구상나무는 제주 한라산이 원산지고, 타케 신부가 표본으로 하버드에 보낸 것이 외국 학계에 보고되면서, 품종 개량돼 전 세계로 뻗어나가 축복과 부활을 상징하는 크리스마스 나무가 됐다.
특히, 이번 전시에서 주목할 것은 타케 신부가 1908년 4월 한라산 600m 서귀포 신례리의 왕벚나무 채집 업적을 남겼다는 것이다. 이를 통해 왕벚나무의 원산지가 일본이 아닌 제주라는 것을 입증해 식물주권을 되찾을 수 있는 중요한 열쇠로 주목해 볼 수 있다.
타케 신부는 선교 자금 마련의 목적으로 밝혀진 것만 2만여 점이 넘는 제주도 식물을 채집해 전 세계 박물관과 대학에 보냄으로써 한국 식물학계에 지대한 영향을 끼친 식물학자로서 업적을 기릴 수 있다.
면형의 집 김성 세례자요한 원장 신부는 “에밀 타케 신부의 탄생 150주년을 맞아 그의 삶과 업적이 알려지지 않아 전시를 준비했다”며 “특히 그가 제주 땅에 사는 식물을 사랑해 채집한 대표적인 식물인 구상나무, 온주밀감나무, 왕벚나무를 재조명함으로써 에밀 타케 신부가 남겨준 유산과 가치를 살펴보길 바란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왕벚나무에 대해서는 ‘소메이요시노벚나무(Prunus yedoensis Matsumura)’가 아니라 우리 왕벚나무 학명을 ‘Prunus JEJUENSIS Taquet 4638’로 선포해 역사적으로 공정하게 식물주권을 회복하는 것이 후대에 해결해야 할 과제라고 전했다.
한편, 오는 30일 면형의 집 세미나실에서는 ‘에밀 타케의 정원’ 조성을 위한 시민포럼이 진행될 예정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