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릴레이 인터뷰] 빛고운 강정에 살어리랏다 ②
강정 사진작가 강방수씨…철학 담아 3년째 기록

검게 그을린 얼굴, 어수룩한 표정에 중년 사내가 강정마을에 불쑥 나타났다. ‘동네 아저씨’ 느낌, 딱 풍기는데 소형 카메라를 들고 섰다. 행색을 보아하니, 기자 아님 사진작가 분위기, 영 안난다. 그래서 주민들은 판단했다. ‘저 놈, 분명히 첩자다.’ 온갖 욕은 다 들었다. 그로부터 2년이 지난 요즘엔 어떨까. “왜 중요한 순간에 찍으러 안오느냐고 또 욕을 먹죠.” 그리하여 맷집 좋은 사내, 강방수씨 이야기다.

 

▲ 강정 사진작가 강방수씨

 

▷ 공사장 작업 도구, 강정에 가다

서귀포시 성산읍 삼달리 출생인 강방수씨(49·동홍동)는 초등학교 때 강정마을 옆 마을, 법환동에 이사와, 어린 시절을 보냈다. 20대 젊은 나이 때부터 한결같이 ‘전기공’을 주 직업으로 삼으며 아등바등 생계를 이어갔다. 그런데, 지난 몇 년 전부터 일정이 더 늘었다. 하루 일이 끝나면, 매일 저녁 7시부터 ‘내집처럼’ 강정마을을 찾는 것. 이미 그는 강정마을 주민이다. 벌써 3년 째, 틈나는 대로 해군기지 문제를 사진으로 일일이 기록하고 있다.

원래 그에게 카메라는 ‘작업 도구’였다. 20년 넘게 공사장에 일하면서 기록사진을 찍어두는 “요긴한 것”에 불과했다. 본격적으로 디지털 카메라를 쥐게 된 것은 2008년 10월, 여느 때처럼 작업을 마치고 강정마을을 지날 때였다. “강정은 사람만의 것이 아니야.” 예술가들이 그린 벽화에 씌인 글귀가 확 와닿았다. “내 개인적인 일과 상관없다고 생각했다”던 그가 ‘해군기지’ 문제를 눈여겨 보게 된, 나름 ‘충격적’인 계기다.

“흔히 주위 사람들은 강정마을 사람들을 비판했죠. 국가와 싸워서 어찌 이길 수 있겠느냐고 비아냥도 거렸고. 제가 사는 곳이 서귀포이고, 강정마을과 또 가까우니까, 객관적인 시각에서 바라볼 거리를 전달해야 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있는 그대로를 알리고 싶었죠.” 그는 해군기지를 두고, 자신이나 이웃들이 무슨 생각을 하는지 상관이 없었다. 그저 ‘자유’를 가로막는 ‘특권’에 반대했다.

 

▲ 사진을 찍고 있는 강방수 씨.

 

 

▲ 강방수 씨의 '어느날' 작품.

 

▷ 사진, ‘생각 거리’ 전달 수단

그래서 카메라를 들쳐 멨다. 그는 “사진만큼 사실적인 것”도 없다고 판단했다. 맨 처음 사진을 찍겠다고 덤벼 들 땐, 주민들 사이에 “도지사한테 똑똑히 전해라”며 도가 파견한 직원으로 오해도 받았단다. 강정마을 사람들, 자연물, 시위나 집회 등 모든 것들을 찍었다. 어느새부턴가, 주민들은 그에게 이렇게 외치고 있었다. 지금 이 모든 상황을 사진으로 담아 달라고.

갓 배워서 그럴까. 작품이라기엔 한참 비켜 났다. 남들 보면, 대략 ‘초보 수준’이다. 그러나, 주민들은 그의 사진에 이미 매료됐다. 왜냐. ‘서민 철학’이 절절 묻어나니까. “어떠한 사진도 절대 주제를 강조하지 않습니다. 지나가는 사람들, 흘리는 눈빛, 바람에 나부끼는 장애물들 전부 넣습니다. 생각할 요소만 제공하는 게 제 철칙입니다.” 그래서 대접받는 이유는 단 하나. “주민들은 특정 주제가 아닌 그 배경 속에 자신의 추억과 기억을 더듬으니까요.”

 

▲ 강방수 씨의 '평화' 작품.

 

▷ ‘영정 사진첩’ 찍게 될 줄은…

‘주민 대표급’ 사진작가인데 옹색하기 짝이 없는 카메라, 지난해엔 큰 맘 먹고 바꿨단다. 중요한 일이 그의 어깨에 불안스레 놓여 있기 때문이다. 최근 주민들은 ‘영정 사진첩’ 찍는 일을 그에게 제안했다. “자신이 행여나 죽게 되면, 해군기지 문제로 싸웠던 자신의 기록들을 영정사진 옆에 사진첩으로 올려달라고 부탁했죠. 마을 주민들은 역사에 남기는 일, 매우 중요하게 생각합니다. 그리고 이건, 아주 심각한 일입니다.”

그리고선, 한참 말을 잇지 못했다. ‘표현의 자유’를 물으며 시작된, 나름 ‘중립적’인 강정 사진작가 활동. 그 기간에 해군기지는 어떤 의미로 다가왔을까. “생각이 점점 깊어만 갈수록 말로 표현할 수 없을 만큼, 단순한 제 삶 자체가 되어 있습니다. 환경이나 생존권 문제가 개인적인 틀을 넘어 점점 사회적인 논의로 옮겨 가면서 생각의 폭이 점점 넓어지고 있습니다. 이러한 생각을 지닌 주민들과의 교류 속에 함께 사진을 찍어가고 있죠.”

수 천장이 넘는 그의 사진들은 일부 강정마을회에 보관되고 있다. ‘무보수’ 봉사 때려 치울 생각 없느냐 물었더니, “강정 바닷가에 바위가 사람들에게 감명을 부르고, 음양의 조화를 이룬 해안선이 유혹하고, 새와 바람, 파도가 잘잘 노래를 부르는 데, 어떻게 그런 생각을 할 수 있겠느냐”고 받아친다. 아무도 모르게, 말없이 주민들에게 힘이 되어 주는 그를 만나 돌아오는 길, 쩔쩔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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