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릴레이 인터뷰> ⑤ 강정에 살어리랏다 - 강동균 회장 어머니

 

▲ 강동균 회장 어머니 고병현씨.

 

‘내 아들만은 아니길.’ 간절히 바랐을 지 모른다. 해군기지 문제로 경찰에 연일 연행되고, 눈덩이 같은 벌금에 남몰래 시름 앓고 있을 아들을 보노라면, 가슴 속에 든 멍이 부르르 떤다. 그래도 어머니는 늘 곁에 있다. 강동균 회장의 어머니를 만나 함께한 맘을 물었다.

어머니 고병현(77)씨. 강정마을 통물 앞에 강 회장 집과 담을 사이에 둔 조그만 집에 산다. 9년 전 교통사고로 뇌에 손상을 입고 무릎이 상해 궂은 일은 할 수 없다고 했다. 수 십년간 강정에서 농사를 짓고, 때론 작물을 장에 내다 팔면서 생계를 이었다.

그녀가 스물 여덟살 되던 해, 교통사고로 남편을 잃고 청상과부가 된 뒤, 1남 4녀를 아등바등 키워냈다. 혼자서 고생하는 어머니를 보며 자라 온 터라, 자식들은 모두 “속 썩이는 법 없이 착하고 순하게 컸다”고 어머니가 말했다.

이따금, 그 때가 후회스럽다. “동균이는 어렸을 때부터 운동을 좋아했지. 서울 배명고에 들어가고 싶어 했는데, 형편이 어려워서 보낼 수 없었어. 그 때 보냈더라면 아들이 해군기지 문제에 관련되는 일은 없었을 텐데...”하고 말을 삼킨다.

 

 

2007년, 해군기지로 혼란스러운 마을 사정에, 아들은 주민들로부터 ‘회장’을 권유 받았다. 어머니는 그 때, “회장 하려거든, 나랑 며느리, 자식들 모두 묶어 놓고 바다에 내다 버린 다음에 하거라”고 아들에게 야단을 쳤다. 아직도 어머니는 “아들이 거짓말도 못하고 순진해서 떠맡은 것”이라고 믿는다. 교육청과 공사 등 번듯한 직장을 그만 두고, 촌에서 착실하게 농사만 짓던 아들인 터라 상실감이 더욱 컸다.

그래도 어머니는 어느 입장을 떠나, 아들의 ‘변호인’이다. 해군기지 문제에, 어머니는 “다 늙은 나야, 어느 입장이건 상관이 있겠느냐”는 태도다. 다시 말하면 어머니는 “내 아들을 누가 죽일까봐 덜컥 겁이 나서” 반대 운동에 동참했다.

그래서 어머니는 한시도 맘 편히 잠을 잘 수가 없다. 불안한 눈은 늘 아들네 집을 향한다. 있어야 할 차가 없으면, 밤이건 새벽이건 상관없이 아들을 찾아 나선다. 마을회관에서 뭔가 하는 아들을 확인하고 돌아오는 길은, 타들어 가는 속처럼 새까만 어둠이 깔린다.

어머니는 그녀의 아버지가 자신에게 했던 말을 또렷이 기억한다. “아버지는 항상 ‘물 좋고, 토지 좋고, 살기 좋아 일강정이다’라고 강조하셨지.” 이젠 그 손자가 대대로 물려 받은 ‘일강정’ 지키려, 선봉장에 서 있다.

 

 

솔직히 말해, 어머니는 몇 번이고 회장직을 그만 둘 것을 권유했다. 어질고 바위 같은 아들이 들을 리 만무했다. 경찰에 아들이 연행됐을 때, 어머니는 마을회관에 들어가 주민들에게 통곡했다. “당신네들이 아들에게 회장(직)을 씌웠는데, 왜 내 아들을 경찰에 가둬나. 우리아들 내버려두고 당신들이 회장을 하라구….”

아들을 이해해 보려고, 어머니는 어딜 가든 “해군기지를 어떻게 생각하느냐”고 묻는다. 그런데 정부(해군)와 도정은 주민들을 이해하려 묻지 않는다. 그래서 어머니는 화가 났다. “우리 말을 제대로 듣지도 않고, 오히려 주민들을 찬성과 반대로 쪼개어 놓았어. 골머리를 다 썩게 만드는 게 국가가 할 도리라니….”

어머니는 아들이 병 날까봐 누군가 해코지 할까봐 오늘도 맘을 죄며 산다. “당뇨가 있는 아들이 늘 건강하게, 지금처럼 있어 줬으면 해. 그거면 족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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