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정에 살어리랏다 6> 고용희 학생…"자연 통해 얻은 감수성, 제 동생은 놓칠까봐…"

 

▲ 고용희 학생.

 

그 날도 남몰래 눈물을 훔쳤다. 한평생 농사 지으며 버둥버둥 고생하던 아버지와 어머니가 해군기지 문제로 ‘죄인’이 되던 그 날. 고용희(21·서귀포시 강정동)는 경찰에 연행된 아버지와 팔에 부상을 입은 어머니를 보면서 숨죽여 분통을 터뜨렸다. ‘뼈 빠지게 일할 줄만 알지, 죄를 짓지 않은 분인데…’ 너무나 당황했고, 또 그렇게도 억울했다.

용희는 고영진(51)씨와 김경자(42)씨 슬하에 1남2녀의 듬직한 장녀다. 강정에서 태어나 유년시절과 청소년기를 모두 보내고 어엿한 대학생이 됐다. 제주대학교에 사회학과(09학번)를 전공하면서 대학 학보사 기자로 활동하고 있다.

용희는 보통 학생들과는 다르게 고향에 관한 애정이 남다르다. “우리 동네는 한집에 사는 식구 같았어요. 어르신들 보이면 꼬박꼬박 안부 여쭙는 인사를 건네기도 하면서 사람 냄새가 물씬 나던 마을이죠. 촌이라서 정말 좋았던 것 같아요.”

정확하게 말하면, 해군기지 갈등이 있기 전까진 그랬다. 용희는 하굣길에 늘상 보이던 아늑한 촌 풍경이 반대 깃발로 사라질 때서야 느꼈다. “마을이 어색하다”라고. “왜 우리 마을은 이렇게 된 걸까. 무엇이 이렇게 만든걸까.” 어린 가슴에 고민 추를 무겁게 달았다.

“해군기지 문제가 터지고 나서, 동네 분들은 언질했죠. 슈퍼를 가더라도 찬성하는 쪽에 찬성만, 반대하는 쪽에 반대만 가라고. 제사 때가 되면 가족끼리 싸우는 모습도 많이 봤어요. 국가 사업이 국민들을 위한 것인데, 주민들에게는 독이 되고 있다는 걸 점차 알게 됐죠.”

 

▲ 지난 3월 국방부 장관 방문 때 경찰과 대치 중인 강정 주민들.

 

이맘때면, 강정천은 하얀 순수함을 무기 삼은 아이들을 누구랄 것 없이 새까맣게 태우곤 했다. 용희는 학교 종이 땡 울리기 무섭게 한걸음에 달려가던 그 냇가를 떠올렸다.

“도시라면 만끽할 문화적인 소양은 나중에라도 얻을 수 있지만, 자연에서 얻은 감수성은 다른데선 쉽게 생겨날 수 없는 거죠. 그래서 걱정돼요. 제 6살 동생, 민성이가 해군기지 건설로 제가 겪어왔던 그 풍광을 놓칠까봐. 저는 그게 너무나도 안타까워요.”

용희는 해군기지 문제를 “교과서에 빗대면 간단하다”고 했다. “교과서로 배울 때는 이렇게 안 배웠어요. 국가 사업이라고 하더라도 국민적인 합의가 우선 되어야 한다고 나왔죠. 앞으로의 제주 현안을 이런 식으로 주민 동의 없이 끌고 갈까봐 두려워요. 충분한 설명과 합의를 이끌어야 되는게 아닌가요.”

해군기지 문제에 무관심한 20대들이 야속할 때도 많다. “친구들은 살인사건이나 성폭행 사건은 다 알면서 해군기지 문제에 관심이 없어요. 보다 소비적이고 흥미로운 것에만 관심을 기울이죠. 그 누구보다 관심을 이끌어야 하는 게 대학생의 역할인데….”

그래서 용희는 학보사에서 기자로 활동하면서 해군기지 문제를 이슈화 했다. 대학생들이 해군기지 문제를 이해하기 쉽게 갈등 전개 과정과 환경 관련 논쟁을 실었다. 용희는 “작은 부분일지 모르지만, 목소리를 내는 사람이 있어야 사회가 조금씩 바뀐다”고 다부지게 말했다.

용희의 꿈은 기자다. 넉넉치 못한 형편이 그를 기자로 이끌었다. 땀에 흥건히 젖은 아버지의 손에 결국 돌아온 것 빚이라는 걸 깨닫게 되면서, “게을러서”가 아닌 “힘이 없어서” 억울한 세상을 자꾸 알리고 싶다고 했다.

“언론을 통해서 자꾸 비춰주고 싶어요. 글을 통해 세상이 바뀔 것이라고 생각해요. 제 글이 한 사람을 바꾸고 한 사람이 주변인을 감동시킬 겁니다. 어려운 사람들 편에 서서 많이 알리고 싶어요.”

용희는 잘 안다. 시위에 나가는 부모님을 보면서, “나라도 그랬을 것”이라며 씩씩하게 편든다. 경찰에 연행되고 부상을 입어 만신창이가 되어도, 담날이면 어김없이 밭일에 나갈 순박한 농사꾼 부부라는 것. 농부로서 너무나도 정당한 권리를 행사하는 것임을 그는 이미 알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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