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운이라 한다. 혹은 하늘이 도왔다고들 말한다. 하루 이틀 더 하늘길, 바닷길의 폐쇄 상황이 이어졌더라면 어땠을까. 그 혼란과 고통은 이루 말할 수 없었을 것이다. 무엇 하나 제대로 수습하지 못하고 매듭을 풀지도 못한 채 우왕좌왕의 연속이었을 것이다. 대자연 앞에 인간의 위용이나 첨단 과학기술도 무용지물이었다. 물론 천재지변 재난이었으나 17세기부터 19세기에 걸쳐 약 200년간 이 땅에 내려졌던 조선시대 출륙금지령이 연상되는 것은 어떤 이유일까. 그 가운데 백성 구휼에 나섰던 의녀 김만덕을 기억나게 했다.

신기록을 세우며 불면과 고통으로 지새운 제주 섬의 며칠간 하얀 낮밤은 씻지 못할 역사의 한 페이지로 넘겨졌다. 언제 그랬느냐는 듯이 곧 잊혀질 역사가 아니라 두고두고 되새겨야 할 반면교사, 지침서로 남겨졌다. 40시간 닫혔던 바닷길이 열리고 42시간 마비되었던 제주공항 활주로에서 비행기가 이륙하는 순간을 기다리던 눈길들을 생각하면, 천만다행이다.

국토교통부가 김포와 김해공항 운영시간을 해제하면서까지 단행한 항공 역사상 초유의 밤샘 운항 역시 새로운 기록이라면 기록이다. 24시간 운항체제 전환 이후 피크타임에는 1분 40초 간격, 제주공항 수용 한계치인 시간당 34편의 항공기 이착륙이 이뤄지기도 했다니 놀랠 노자다. 한꺼번에 몰린 수천 명의 대기승객들이 연출한 광경은 연일 신문, 방송의 톱뉴스로 떴다.

기록의 폭설, 기록의 기온 급강하였다. 32년만의 폭설, 93년만의 최저기온이라니 할 말을 잊는다. 70세 된 분, 80세 넘은 토박이 어르신께 여쭸다. 이런 천기 겪으셨냐고. 듣도 보도 못했다 하신다. 3만8610가구 정전피해에 수도계량기 동파 1382건, 폭설로 11동 비닐하우스가 내려앉고 강풍에 45톤 선박이 침몰했다. 많은 양식장 시설피해와 광어 폐사, 누전으로 인한 화재, 쓰레기매립장 시설파괴, 산악 고립, 크고 작은 교통사고, 눈길 낙상사고로 58명이 구급 이송되기도 했다. 신고되지 않은 경우와 함께 아직도 조사 중에 있어서 그 피해와 피해액은 점점 늘어나고 있다. 피해 복구가 더 신속히 이뤄져야 하는 이유이다.

무엇보다 제주에 관광 왔던 수천명이 공항에서 박스를 깔고, 텐트를 쳐서 노숙하는 모습은 외신까지 장식했다. 공항 주변과 인근 도로의 극심한 차량정체, 제설되지 않은 도로 사정으로 도민들의 바깥출입 제한 등 금액으로 따질 수 없는 피해가 더욱 컸다. 여기에다 ‘공항 수하물센터, 종이박스 1만원 판매 폭리’, ‘택시요금 10만원 바가지’ 같은 유언비어는 제주이미지를 실추시켰다. 뒤늦게 루머로 판명났으나 일부 언론은 경마식 중계보도로 언론이라 할 수 없는 제주 언론의 민낯을 드러냈다. ‘신속하고 정확한’ 보도가 아니라 ‘신속하고 부정확한’ 보도로 오명을 남겼다.

정작 가장 중요한 것, 외지에 나갔다가 돌아오지 못하는 경우 등 도민에 대한 배려와 대처가 부족했다는 지적이다. 다시 돌아봐야 할 점은 기상재난상황 발생 시 컨트롤 타워 부재현상이다. 이미 예고되고 대비 가능한 상황을 제대로 챙기지 못한 총체적 부실인 탓이다. 이번 한번으로 끝날 일이 아니라는 점에서 시급히 케이스별 매뉴얼을 갖춰야 한다는 요구가 거세다. 원희룡 지사도 언급했듯이 자치단체 독단으로 조치할 수 없는 부분이 많아 그 중요성은 더욱 커졌다. 자치단체와 국토교통부, 국민안전처, 공항공사, 민간 항공사까지 머리를 맞대는 비상사태 대응 컨트롤 타워와 케이스 바이 케이스형 매뉴얼 작성이 어느 때보다 시급히 요청된다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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