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온이 아직 급강하하지 않은 탓인지 초겨울치고는 포근한 날이 지속되는 서귀포시 날씨에 감사할 일이다. 감귤 수확 일손이 바쁜 농가들에도 무척 고마운 날씨이다. 감귤 수확 기간만큼은 비도 안 왔으면 하는 바람이다. 서귀포 시민들이 자신의 일에 분주하면서도 29일, 청와대 춘추관에서 행해진 박근혜 대통령의 3차 대국민담화는 모두 지켜보았음인지 가는 곳마다 '알맹이 없는', '자신의 잘못이 무엇인지도 모르는' 담화였다고 한 마디 던지지 않는 이가 없다. 무엇 하나 제대로 아는 게 없고 자신이 처한 상황이나 지금 해야 할 일, 해야 할 말을 모르는, 그렇게 철없는 이를 일국의 대통령으로 뽑았던 것이냐는 힐난과 회한의 목소리가 넘쳐난다.

오죽하면 대통령의 3차 대국민담화 이후에 시행된 여론조사에서 국민의 절대 다수가 탄핵해야 한다는 응답이라는 사실을 대통령만 모르는 것인지 참으로 깝깝한 노릇이다. 100만 촛불이 200만이 되고 500만, 1000만 횃불이 되어도 꿈쩍하지 않을 듯한 표정, 회담장에서 대통령이 보인 '회심의 미소'에는 또 어떤 음모가 도사리고 있는 것인지 국민들의 분노를 한층 더 자아내고 있다.

여론조사기관 <휴먼리서치>의 지난 11월 30일 여론조사 내용을 살펴보면, 국민들의 분노는 좀처럼 사그러들지 않았음을 여실히 보여준다. 대통령 담화 직후인 29일 오후 5시부터 8시까지 전국 성인남녀 1천35명을 대상으로 담화에 대한 만족도 조사에서 '불만족'이라는 답변이 73.3%였다. '만족한다'는 20.3%. 또 국회의 향후 대응방안에 대해 70.5%가 '탄핵 계속 추진' 답변이었고, '국회, 퇴진일정 논의' 응답이 25.6%로 나타났다. 퇴진 시기에 대한 질문에 '조건없이 즉시 하야' 69.7%, '국회의 일정 논의 후'는 27.8%였다(100% 휴대전화 임의번호 생성 ARS 방식, 응답률 11.5%, 표본오차 95% 신뢰수준 ±3.1% 포인트).

이러한 비판은 곧 국정 역사교과서로 불이 옮겨 붙고 있다. 지난 28일, 교육부가 현장 검토본을 공개하면서 실체가 드러난 국정 역사교과서는 '박근혜 역사교과서'라는 별칭으로 비아냥거리기도 한다. "국정 농단에 이은 역사 농단"이라는 비판이 연일 쏟아지고 있다. 이미 장기집권 시나리오에 따른 투 트랙 농단이라는 비난이 쏟아진 바 있다. 역사 왜곡은 일본, 중국 등 딴 나라의 일로만 생각했던 국민들에게 우리의 역사도 이처럼 비밀스럽게 통치자들의 입맛에 맞게 녹이고 구부리며 치장하고 미화시킬 수 있는 것인가, 새삼 깨우치며 아연실색하고 있다. 올곧은 역사학자들의 평을 옮기면 "친일과 독재 미화뿐만 아니라 민주주의의 역사를 축소왜곡했다"는 것이다.

제주4·3유족회와 제주4·3연구소는 정부의 한국사 국정교과서에 대해 "왜곡된 역사관이 그대로 드러났다"면서 즉각 폐기를 주장한다. 29일 기자회견과 성명서 등을 통해 "4·3 기술을 보면 4·3의 역사를 축소했고, 면피성 서술이라고 밖에 할 수 없다"고 밝혔다. 국정 역사 교과서를 보면, 제주4·3사건이 일어난 배경에 대해 전혀 모른 채 '대한민국을 거부한 남로당의 무장봉기'로 기술되고 있음이 드러났다는 것이다. 당시 3·1사건에 대한 미군정의 실책이라든지 서북청년단이 제주도민에게 자행한 가혹한 폭력, 경찰의 고문치사 사건 등 4·3사건이 일어난 배경에 대한 설명은 아예 없다니 참으로 한심한 역사 기록이 아닐 수 없다.

 "1947년 3월 1일 경찰의 발포사건을 기점으로 하여, 경찰서청의 탄압에 대한 저항과 단선단정 반대를 기치로 1948년 4월 3일 남로당 제주도당 무장대가 무장봉기한 이래 1954년 9월 21일 한라산 금족지역이 전면 개방될 때까지 제주도에서 발생한 무장대와 토벌대간의 무력충돌과 토벌대의 진압과정에서 수많은 주민들이 희생당한 사건"이라는 정부 발행의 진상조사보고서(2003, 536쪽)의 내용도 있는 그대로 전재해야 옳은 일이 아닌가.

"과거를 잊은 민족에게 미래는 없다"는 처칠의 말을 빌리지 않더라도 역사는 바르게 쓰여질 때에 역사로서 존재가치가 있고 자라나는 미래세대에게 미래를 열어나갈 힘을 얻게 하는 법이다. 더군다나 학생들로 하여금 바른 역사관, 국가관을 갖게 하는데 유용한 지침이 되어야 할 우리의 역사를 이처럼 왜곡되게 기술한 국정 역사교과서는 폐기해야 마땅한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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