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98주년 3․1절을 지낸 도민의 마음은 여전히 무겁기만 하다. 최근에 국내외적으로 전개되고 있는 상황들이 심상치 않은 가운데 나라 안팎으로, 또 제주지역이 처한 처지가 녹록치 않아서이다. 국민의 안전과 행복을 약속했던 정부는 국정 농단으로 인한 탄핵 국면을 맞았다. 고위 관료들과 재벌 총수를 비롯한 경제계 거물들도 국정농단의 공범으로 줄줄이 쇠고랑을 차고 있는 현실 속에서 사드 문제로 촉발된 찬반에 따른 갈등과 고통, 나아가 국론 분열도 한층 커지고 있다. 이 또한 남북 분단체제라는 엄중한 현실은 물론 미·중간 힘겨루기 틈바구니에 처한 대한민국의 현실을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일에 다름 아닐 것이다.

이러한 국제정세 속에서, ‘조선이 독립한 나라임과 조선 사람이 자주적인 민족임을 선언’한 기미독립선언문을 다시 살펴보는 일은 유의미하다 하겠다. “2천만 각자가 사람마다 마음의 칼날을 품고, 인류의 공통된 성품과 시대의 양심이 정의의 군대와 인도의 무기로써 지켜 도와주는 오늘날, 우리는 나아가 얻고자 하매 어떤 힘인들 꺾지 못하랴? 물러가서 일을 꾀함에 무슨 뜻인들 펴지 못하랴?”는 의기로움을 다시 생각한다.

“새 천지가 눈앞에 펼쳐지도다. 힘의 시대가 가고 도의의 시대가 오도다.…우리가 이에 떨쳐 일어나도다. 양심이 우리와 함께 있으며, 진리가 우리와 더불어 나아가는도다. 남녀노소 없이 음침한 옛집에서 힘차게 뛰쳐나와 삼라만상과 더불어 즐거운 부활을 이루어내게 되도다.” 우리가 이뤄내야 할 도의의 시대가 다시 우리 앞에 다가오고 있다. 도도한 역사의 물결, 그 흐름 앞에서 멈칫거리거나 주저함이 있을 수 없다. 국민에 의한 개혁, 잘못된 역사의 변혁을 이루는 일이다.

어제 오전 7시40분, 서제와 쌍벽봉수제 봉행으로 시작된 조천읍 만세동산 3·1절 만세대행진은 기미년 당시 만세운동을 재현하는 행사로서 의미가 크다. 이 집회에 참가한 남녀노소 누구라 할 것 없이 최근 제주에서 벌어진 태극기집회의 태극기 모독 현상에 대해 한 마디씩 일침을 가했다. “애국이 무엇인지도 모르는 사람들이 벌이는 추태”라고. 만세대행진 행사가 끝나고서 오전 10시에 제98주년 3·1절 기념식이 조천체육관에서 열렸다.

오후 1시부터는 ‘제주 평화나비’ 청년들이 지난해 12월 18일 한·일 양국간의 ‘위안부 합의 무효’를 외치며 거리행진을 펼쳤다. 도청 앞을 출발한 행렬은 한라대학교 맞은편에 위치한 방일리공원 ‘평화의 소녀상’까지 구호와 노래를 부르며 흥겹고 당당한 분위기 속에서 행진했다. 신제주 바오젠거리 플래시몹과 노형로터리에 위치한 일본영사관 앞 수요시위도 진행했다.

오후 4시, 제주시 관덕정 광장에서는 제주4·3의 도화선이 됐던 1947년 ‘3·1절 제주도대회’ 70주년 기념 및 제주 4·3 70주년 기념사업위원회 출범식이 열렸다. 출범식 이후에는 관덕정에서 동문로터리를 거쳐 북초등학교를 잇는 거리행진도 이어졌다. 출범식을 기화로 제주4·3 70주년 기념사업위원회는 향후 4·3 관련 대선 정책제안을 비롯해 4·3 수형인 문제 해결 촉구를 위한 기자회견, 세월호 유가족과 함께하는 제주4·3평화기행, 청년들과 함께하는 ‘힙합’으로 기억하는 제주 4·3 역사 기행, 제주4·3 왜곡사례 접수창구 개설 및 대응사업 등을 4·3 범국민위 구성과 함께 진행해 나가게 된다. 그 활동에 거는 기대가 자못 크다.

1919년 3월 1일 ‘기미년 3․1 만세운동’. 일본의 식민지 지배에 저항해 온 민족이 떨쳐 일어난 항일운동은 민족 자주·자강·자립, 독립의 뜻을 세계만방에 알린 거사로서 이러한 3·1운동의 정신은 오늘날까지도 연면히 이어지며 후대에도 계승되어갈 소중한 유산으로서 가치를 지닌다. 열강들의 각축 속에 자주 독립을 위해 분연히 일어났던 그 기상이 오늘날의 현실 속에서 펼쳐지는 모습이 바로 나라를 바로 세우려는 국민에 의한 ‘촛불 혁명’에 담겨져 있는 민심이 아닌가 여겨진다.

또한 현재 논란이 되고 있는 ‘사드’의 한반도 배치는 우리 제주에도 영향을 끼칠 수밖에 없는 현실적 문제이다. 지난 2월 28일 자 중국 <인민일보>에서 “한국의 사드 배치 동의는 한반도를 화약통으로 만든 것과 같다”고 언급했다. 바다의 사드 ‘줌월트’의 제주해군기지 배치, 제2공항에 대한 공군의 제주남부탐색구조부대 배치설 등이 현실화될 경우에 제주도는 또 하나의 화약고가 될 수 있다. 제주도정이 발표한 대선 반영 공약 중에 제주도를 평화의 섬으로 지켜내겠다는 의지가 담긴 공약 하나 없다는 것은 문제다. 원희룡 지사는 제주 땅의 '군사기지화'는 어떤 경우에도 안 된다는 점을 명확히 밝혀야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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