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중섭미술관 기획전 <다방 르네상스, 이중섭의 친구들>, 14일 개막

이응노의 '해녀'(1950년대 작).

우리나라 최초의 다방은 1888년 외국인에 의해 인천에 세워진 대불호텔과 슈트워드호텔 안에 있었다고 전해진다. 그후 1902년에 독일계 러시아인 수잔 손탁이 지은 손탁호텔 안에 다방이 있었고, 1923년, 이미 서양문물이 많이 보급되었던 시절에 일본인이 서울 명동에 ‘후타미’라는 근대적 의미의 다방을 개업했다. 당시 다방의 주요 고객은 일본인과 일본 유학생, 외국문물을 접한 일부 지식인 등으로 일반인보다는 특권층이 주를 이루었다.

우리나라 사람이 최초로 다방을 개업한 것은 1927년으로, 최초의 영화감독인 이경손이 관훈동 입구에 ‘카카듀’라는 이름의 다방이다. 이후 종로, 명동, 소공동, 충무로 등지를 중심으로 많은 다방이 문을 열어 음악감상실과 같은 역할을 하면서 소위 말하는 다방문화가 형성되었다. 다방에서 전시회를 개최하기도 하고, 문학인의 행사, 출판기념회 등이 열리면서 다방은 문화예술의 중심 역할을 했다.

전문적인 갤러리가 없던 시절 다방은 휴식공간이자 복합문화공간이었다. 문학인, 미술인들이 모여 하루 종일 앉아 차를 마시며 토론하거나 음악을 듣고, 때로 시화전이나 작품 전시회를 열었다. 따라서 다방은 예술가들의 사교장소로서 늘 붐볐다. 예술가들은 다방에 있다가 술과 밥 먹을 거리가 생기면 누구랄 것 없이 따라 나섰다. 가난한 예술가들에게 밥과 술을 사는 지인이 고마운 시절이었다.

한국전쟁을 전후해서는 피난지 부산의 ‘밀다원’, ‘금강다방’을 중심으로 이중섭과 구상, 그의 친구들도 다방에 모여 담소를 나누기고 하고 전시회를 개최하기도 했다. 1952년 3월 1일~7일 부산 광복동 일대 다방에서 대한미술협회 주최 《3.1절 축하미술전람회》가 열렸다. 이때 이중섭은 망향다방에 작품을 전시했다. 1953년 성림다방에서 개인전 개최, 1954년 호심다방에서 유강열, 장윤성, 전혁림과 함께 4인전 개최, 마산 비원다방에서 김환기, 박고석, 남관, 양달석, 강신석과 6인전을 개최했다.

이중섭은 1952년 부산 광복동의 금강다방, 금잔디 다방에서 한묵, 유병희, 정규를 만났고, 돌체다방에서는 김서봉, 전상수를 만나곤 했다. 박고석은 1951년 12월과 이듬해 2월 사이에 김병기와 같이 온 이중섭을 다방에서 처음 만났다고 한다. 박고석은 다방이 밀집한 광복동 일대의 시기를 ‘밀다원 시대‘라고 했다. 녹원다방에서 이중섭은 백영수 개인전 때 백영수를 만나 친구가 되었고, 금강다방에서 삽화를 같이 그리기도 했다.

동료 화가인 손응성은 “이중섭은 다방 한구석에 앉아 하루 종일 담뱃갑 속 은박지를 모아 골펜으로 여러 가지 그림을 그렸는데 파인 곳은 ’세피아‘로 채색을 하곤 했다. 그리고 며칠에 한번 씩 얻어먹는 식사지만 조금도 배고픈 낯을 하지 않았다. 그런 때를 무사히 넘기려고 아마 은딱지 그림을 수없이 그린 모양이었다”라고 이중섭을 회고했다. 이 밀다원 시대는 다방 르네상스 시대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부산 광복동은 피난민 예술가들의 아지트로 다방이 중심에 있었다. 부산 범일동에서 이중섭과 어울렸던 화가는 송혜수, 김영주, 백영수, 손응성, 박고석 등이다.

다방은 창작의 장소임과 동시에 이중섭이 동료 예술가들과 어울려 고향과 가족에 대한 그리움, 배고픔을 달랬던 장소, 한국화단의 생생한 증언의 공간, 기억의 공간이기도 했다. 한국전쟁 이후 제주도에서는 소라다방, 산호다방, 호수다방, 백록다방, 회심다방, 대호다방 등을 중심으로 다방전시가 이루어졌다. 이렇듯 한국미술에서 다방이 차지하고 있는 비중은 매우 크다고 할 수 있다. 이는 다방 전시가 갖는 사회적 상황이자 시대적 특수성이라고 말할 수 있는데, 다방은 한국전쟁 이후 서구화를 근대화로 인식한 나머지 모더니즘 문화의 교착지가 되기도 했다.

이번 전시는 피난지 부산을 중심으로 이중섭과 다방에서 함께 전시를 했던 친구들의 작품을 통해 한국미술의 발자취를 되돌아보고자 한다. 이번 전시를 통해 전시상황에서도 피난지를 근거지로 생활의 곤란을 넘어 ‘친구 따라 강남 갔던’ 그들의 우정과 로망을 알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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