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적인 문화인류학자이자 문명연구가인 재레드 다이아몬드(Jared Diamond)는 <나의 세계-인류의 내일에 관한 중대한 질문>(김영사, 2016)에서 부유한 국가의 근본 원인을 오랜 지리적 특성과 국가의 훌륭한 제도에서 찾는다. 이를 근거로 중국의 패권에 대해 내놓은 분석과 예측은 명쾌하다.

중국은 세계에서 농업이 가장 일찍 발생한 지역이고, 곡물과 가축의 종류도 다양했다. 인구도 풍부했고 운하와 화약, 나침반 등 세계 과학을 선도할 만한 발명품들을 세상에 내놨다.

명나라 영락제는 이미 1405년부터 1433년까지 정화 장군을 앞세워 일곱 차례나 세계 원정을 단행했다. 길이가 100미터에 이르는 선박 수백 척에 태운 선원 수가 2만8000명이었다니, 콜럼버스의 함대에 비하면 규모가 어마어마했다.

하지만 거가까지다. 영락제가 사망한 후 후임 황제들은 더 이상 해외 원정대를 파견하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중국 선박들이 먼 바다로 나가는 것을 금하는 명령을 내리기까지 했다.

반면에 유럽의 경우는 달랐다. 콜럼버스는 처음에 이탈리아 군주를, 이후 프랑스 공작을, 다음은 포르투갈 왕을 찾아가 부탁해지만 번번이 거절당했다. 이렇게 수차례 거절을 당한 끝에 일곱 번째 시도에서 스페인 왕의 지원을 끌어냈다.

콜럼버스는 정화의 원정대보다도 90년이나 뒤에 세계 탐험에 나섰지만, 결국 세계를 차지한 건 유럽인들이었다. 중국에는 재정적 지원을 결정할 만한 지위에 있는 자가 황제 한 사람 뿐이었던 반면에 유럽은 각각의 작은 단위들이 다양한 모험과 시도들이 가능했기에 이뤄낸 성취다.

문재인 정부는 출범과 더불어 지방분권을 국정과제로 내걸었다. 공공기관을 대폭 지방으로 이전하고, 지방정부 재정운영의 책임성과 자율성을 강화하는 게 주요 골자다.

원희룡 도정도 지방분권 시대에 맞게 △동북아 환경수도 등 제주특별자치도 비전 정립 △제주특별자치도의 헌법적 지위 확보 등을 비롯해 제주자치도의 분권모델을 완성하겠다는 의지를 밝혔다.

그런데, 청와대 이용선 시민사회수석 등은 지난봄에 제주도의회를 방문해 김태석 의장을 면담하고 43명 도의원 전체가 서명한 ‘제주해군기지 국제관함식 개최 반대 촉구안’을 의결하지 말 것을 종용했다. 도의회는 청와대 비서관의 한 마디에 얼어붙었다.

원희룡 지사는 행정체제 개편을 논의하면서 행정체제개편위원회라는 책임도 권한도 없는 조직을 통해 ‘4개 행정시’와 ‘행정시장 직선제’를 주요 골자로 주민투표를 추진하려 하고 있다. 주민투표 발의 과정에서 행정의 의견은 반영됐지만 주민들, 특히 서귀포시민들은 의견을 개진할 기회조차 차단당했다.

중앙이 한 줌 권력도 내주려 하지 않으면서 문서로만 논의되는 지방분권을 주민들은 신뢰하지 않는다. 서귀포시의 자치권이 없는 ‘자치’와 ‘분권’은 공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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