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래휴향형주거단지 사업이 대법원 판결로 좌초됐지만 제주자치도나 제주국제자유도시개발센터, 국토부 등 사업을 추진했던 기관들이 후속대책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 천혜의 경관을 자랑하는 예래동 해안이 유령도시로 장기 방치될 위험에 처했다.

대법원은 지난달 31일, 토지주 8명이 제주도와 제주국제자유도시개발센터(JDC) 등을 상대로 제기한 ‘도시계획시설 사업시행자 지정 및 실시계획인가 처분 취소 등’ 소송과 관련해 1, 2심과 같이 제주도와 서귀포시의 15개 행정처분을 모두 무효로 최종 판단했다. 휴양형 주거단지를 유원지로 개발하는 인가처분은 법률 요건을 위반해 무효에 해당한다는 취지다. 애초에 관광단지로 개발했어야 하는 사업을 유원지 지구로 개발해 사업에 실패한 것이다.

경제적 손실뿐만 아니라 사회 갈등, 행정에 대한 신뢰도 등 모든 면에서 남은 손실이 막대하다. 이후 토지주들의 반환 소송이나 사업에 투자한 외국기업의 손해배상 소송 등을 예상한다면 눈앞이 막막하다.

그런데 이와 관련해 책임을 져야할 기관들은 여전히 뒷짐을 지고 있다. 원희룡 지사는 지난 13일 서귀포시민과의 대화에서 “제주국제자유도시개발센터가 문제를 잘 풀 기회가 있었는데, 놓쳐버렸다”고 답했다. 행정은 책임이 없고, 국제자유도시개발센터가 사업추진을 잘못하고 사후관리를 잘못해서 문제가 불거졌다는 지적이다. 이런 발언의 이면에는 전임 도정 시절에 추진된 사업이라 원 도정이 책임을 떠맡을 사안이 아니라는 인식도 깔린 것으로 보인다.

제주자치도가 추진한 사업이 아니라할 지라도 각종 행정허가를 내준 건 제주자치도와 서귀포시다. 행정기관이 책임을 피할 수 있는 사안이 아니다.

문제는 주민들, 더 나아가 제주도민들이 피해가 적지 않다는 점이다. 사업이 중단된 현장에는 짓다 만 회색빛 건물들만 즐비하다. 지역주민이 지적한대로 예래단지는 애물단지로 변했고, 마을을 유령도시로 추락하고 있다.

그런데 이에 대해 제주자치도나 제주국제자유도시개발센터는 후속대책 마련에 손을 놓고 있다. 두 기관 관계자들이 지난 18일에 아무런 대안도 마련하지 않은 채 관련 주민들을 만나 대책을 논의하려 했지만 핀잔만 듣고 돌아갔다. 참석한 주민들 대부분이 예래휴양형주거단지 사업에 우호적인 이들이지만 “두 기관의 수장이 이 문제와 관련해 주민들에게 사과하고 책임을 지고 대책마련에 나서야한다”고 촉구했다. 과한 요구가 아니다.

하지만 문제 해결에 가장 앞장서야할 제주국제자유도시개발센터는 이사장마저 공석이다. 원희룡 지사는 먼 산만 쳐다보고 있다.

제주국제자유도시개발센터와 그 상위기관인 국토교통부, 그리고 이들의 충실한 조력자 제주자치도가 맑고 푸른 제주섬을 잿빛 유령도시로 만들고 있다. 제주도는 영화의 제목처럼 ‘나쁜 분들의 전성시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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