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저널리즘 지성의 최고봉으로 불리는 리영희 선생은 전두환 군부의 서슬이 시퍼렇던 80년대에 ‘해방 40년의 반성과 민족의 내일’이란 글로 친일파들이 여전히 득세하는 세태를 꼬집었다.

리영희 선생은 당시 광복절 기념식의 풍경에 대해 ‘일제의 모진 고문으로 손톱이 다 빠져버린 늙은 애국지사에게 훈장이나 표창장을 수여하는 높은 분은 으레 일본제국 황국군대의 육군소위였거나 중위였던 사람이다. 해방된 나라에서는 오히려 멸시받고 배척당한 독립자사들을 줄 세워 놓고 높은 단 위에서 치하하는 분은 일본 제국주의 만주 괴뢰국 군대의 장교였던 이라고도 한다’(<분단을 넘어서>에서 인용)라고 꼬집었다.

리 교수는 해방이후 친일파가 활개치고, 독립운동가들이 숨을 죽이고 사는 나라에 대해 늘 한탄했다. 그리고 ‘다시 일본 교과서 문제를 생각한다’는 글에서는 ‘일본의 교과서(역사외곡) 문제를 보고서의 우리들의 흥분 속에서 이 같은 자기성찰의 노력은 거의 볼 수 없었다’며 친일파가 득세하는 우리의 실태를 먼저 성찰하라고 권했다.

감히 돌아가신 선생의 30년도 더 지난 책을 펼치는 이유가 있다. 최근 문재인 정부가 3.1절 특사와 관련해 강정마을에 보이는 태도 때문이다.

부는 3·1절 100주년을 맞아 강력범죄·부패범죄를 배제한 일반 형사범, 특별배려 수형자, 사회적 갈등 사건 관련자 등 4378명에 대한 특별사면을 단행했다고 26일 밝혔다. 정부가 밝힌 사면 대상자들 가운데는 일반 형사범의 특별사면·감형·복권 등이 4242명으로 절대 다수를 차지한다.

거기에 소위 7대 사회적 갈등 사건 관련 특별사면 대상자가 107명 포함됐다. 사드배치 관련 사건으로 사법처리된 사람 30명을 전원과 2009년 쌍용차 파업 관련 사건에서 직권남용으로 처벌된 경찰관 등을 포함한 7명도 사면대상자에 포함됐다.

그 밖에 광우병 촛불시위 관련사건(13명)과 밀양 송전탑 공사 관련사건(5명), 세월호관련 사건(11명), 한일 위안부 합의안 반대 관련사건(22명) 등과 더불어 제주해군기지 건설관련 사건(19명)이 눈에 띈다.

제주해군기지는 지난 2007년에 노문현 대통령이 집권하던 시절 국책사업으로 추진한 사업이다. 그것도 당시 선거법 위반협의로 기소된 김태환 전 지사를 압박해 절차도 지키지 않고 사업 대상지를 결정했다. 제대로 된 명분도 제시하지 못했다.

적어도 이 사업에서 노무현-문재인 정부는 가해자다. 제주해군기지 사업에 저항하다 기소되어 형이 집행된 사람이 3명이고 집행유예가 선고된 이도 174명에 이른다. 그리고 286명은 벌금형에 처해졌다.

이 많은 이들을 범법자로 만든 건 노무현-이명박-박근혜로 이어지는 대한민국 정부다. 문재인 정부는 이전 정부의 대를 이을 뿐만 아니라, 노무현 정부의 자산을 물려받은 정부다.

그런데 19명 사면대상자를 발표하며 ‘공동체 회복’을 운운한다. 사면 이전에 주민들을 투사와 전과자로 만든, 그 부끄러운 과오에 대해 사과하고 그 진상을 세상이 밝히는 게 우선이다. 죄없는 자가 죄 지은 자를 용서하는 것이 사면이다. 누가 누구를 사면한단 말인가? 독립운동가와 친일파의 뒤 바뀐 위치가 떠오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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