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4월이다. 겨우내 메말랐던 들녘에 고사리가 돋고 거리에 왕벚꽃이 팝콘처럼 웃음을 터트렸다. 코로나19가 몰고 온 공포의 도가니 속에서도 계절은 제 할 도리를 다한다. 그 와중에 다시 제주4·3을 맞는다.

재작년 제주4·3 70주년을 맞을 당시만 해도 도민들은 제주4·3에 대한 획기적인 계기가 마련될 것이라 기대했다. 문재인 정부가 새롭게 출범하고, 여야를 막론하고 정치권이 제주4·3의 완전한 해결을 약속했다. 앞서 2017년에 오영훈 의원이 제주4·3 관련 단체들의 의견을 받아 제주4·3특별법 개정안을 국회에 제출했기 때문에 이에 대한 처리가 국회에서 이뤄지길 기대했다. 이후 권은희, 박광온, 강창일, 위성곤 의원 등이 발의한 개정안들이 차례로 국회에 제출하며 왕성한 논의의 토대도 마련됐다.

그런데 20대 국회가 끝나가는 상황에서도 이들 법률안은 제대로 논의조차 되지 않았다. 4·3 희생자 보상과 관련한 재원마련에 정부 특히 기재부가 `신중검토` 입장을 유지한 게 주요 이유라고 알려졌다.

그동안 제주4·3 관련 진상규명과 명예회복에 상대적으로 적극적이었던 집권 더불어민주당과 문재인 정부가 법안 처리를 위해 협의도 하지 않은 것으로 드러났다.

원희룡 제주특별자치도지사와 송승문 제주4.3희생자유족회장, 양조훈 4.3 평화재단 이사장 등이 지난해 11월 26일 국회를 방문해 이채익 행자위 법안심사소위원장(미래통합당)을 만나 조속한 심사를 요청하고 약속도 받았지만 결실이 없었다.

선거법 개정안·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 설치 법안 등 패스트트랙 처리를 둘러싸고 여야간 대치가 지속되면서 개정안은 마지막까지 법안심사소위에서 논의도 되지 않았다.

국회는 촛불혁명 이후 조성된 황금 같은 기회를 날려버렸다. 21대 총선에 돌입하면서 여야가 법안 처리가 무산된 책임이 상대에게 있다고 주장한다. 미래통합당은 집권 더불어민주당이 정부를 설득하지 않았다고 공격하고, 더불어민주당은 법안심사소위 위원장이 심의대상에 올리지 않았다고 반박한다. 그럴 게 아니라 도민과 유족회, 4·3 영령들에게 사과부터 할 일이다.

영국의 시인 토머스 스턴스 엘리엇(Thomas Stearns Eliot)은 ‘4월은 가장 잔인한 달’이라고 했다. 그리고 ‘겨울은 따뜻했었다 / 대지를 망각의 눈(雪)로 덮어주고 / 가냘픈 목숨을 마른 구근으로 먹여 살려주었다’고 했다.

시인이 노래한 대로 지난겨울, 이명박·박근혜 정부 시절이 도민에게 더 밝은 희망이 있었던 것은 아닐까?

4․3의 아픔을 억눌러야만 했던 제주도민들의 가슴이 아픈 4월이다. 총선에서 여야를 막론하고 각 정당의 후보들이 제주4·3특별법 개정안을 처리하겠다고 약속하고 있다. 다시 도민을 배반하면 누구도 심판을 면치 못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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