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자치도가 감귤박물관 입구에 식재된 하귤나무 두 그루를 향토유형유산 제31에 지정한다고 밝혔다. 제주도 최초의 하귤나무로 알려졌는데, 제주자치도 세계자연유산본부는 해당 감귤목이 그 기원이 기록으로 정확히 남았고, 오랜 기간 생명력을 이어온 점을 지정 사유로 밝혔다.

'경주김씨익화군제주파세보’ 1권의 기록에 따르면, 하귤나무는 고종 31(1894)에 김홍집이 신효동에 거주했던 김병호 옹에게 전달한 씨앗 3개를 심은 것이 자란 것이다.

김홍집은 조선의 운명이 풍전등화에 놓였던 구한말, 뛰어난 협상력을 발휘하며 조선을 지속시키려 애쓴 인물이다. 수신사로 일본에 파견되어 조선의 개항과 관세징수 등 현안에 대해 일본 외무상 이노우에와 협상을 벌였다. 김홍집은 당시 일본의 뛰어난 문물에 적잖이 충격을 받았다고 전한다.

일본이 임오군란에 따른 보상을 요구할 때 통리기무아문 외교 담당가로 뛰어난 협상일 이끌었고 개화파가 일으킨 갑신정변의 뒷처리를 해야 했다. 갑오개혁을 주도했고, 대한제국 출범 후에는 초대 총리에 올라 꺼질지도 모르는 나라의 불씨를 살리기 위해 강대국들과 협상테이블에 마주 앉았다.

신효동의 감귤나무가 국운이 위태롭던 시절 김홍집이 전한 씨앗이 자란 것이라니, 나무 한 그루에는 망국 정치가의 희망과 고뇌, 좌절 등이 담겼다.

당시 김홍집이 전한 씨앗 3개 가운데 두 개는 김병호 옹의 딸에게 전해졌고 나머지 한 개는 김 옹이 직접 마당에 심었다. 딸이 심은 씨앗은 모두 고사했고 김 옹이 신효동에 심은 씨앗만 싹이 터서 지금까지 생명을 유지하고 있다. 당시 씨앗에서 발아된 묘목의 가지를 탱자목에 접목돼 자란 것이 신효동 하귤나무 아비나무다.

그렇게 120여 년을 한결 같이 한 자리를 지켰다. 조선이 대한제국으로, 다시 일제강점기로, 미군정기와 대한민국의 성립까지 모든 과정을 지켜본 나무다. 도중에 이 땅에는 제주4·3의 비극도 있었고, 70~80년대 번영기와 90년대 이후 외환위기의 격랑도 있었다. 하귤나무와 제주민초들이 지내온 여정이 많이도 닮았다.

김병호 옹의 후손인들이 지난 2017년 뜻을 모아 감귤박물관에 기증했다. 이들은 당시 오래된 감귤목이 집을 떠나게 돼서 아쉽지만 감귤박물관이 전문적인 관리를 통해 하귤의 역사의 산 증인인 이 나무를 오랫동안 보전하길 바란다는 소망을 전했다.

감귤박물관이 하귤나무를 성공적으로 이식해서 잘 키웠으니 향토유형유산에 지정되는 영광도 얻었다. 기왕에 유산본부가 그렇게 지정했으니, 김홍집이 전한 씨앗의 기원과 관련해서도 더 풍부한 얘기들이 더해지길 기대한다. 학계와 예술계의 관심과 분발을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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