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회는 2월 26일, 역사에 남을 만한 법을 통과시켰다. ‘가덕도신공항 건설을 위한 특별법’이라는 전례를 찾아보기 어려운 법이다. 가덕도에 신공항을 건설하되, 예비타당성조사를 면제하고 사전타당성조사도 간소화하는 등 사업 조기착공에 걸림돌이 될 만한 것들을 모두 제거한다는 취지다. 재석 의원 229명 가운데 181명 찬성했고, 33명이 반대했다.

더불어민주당은 지난해 11월, ‘가덕도 신공항 건설 촉진 특별법’(대표발의자 한정애)을 발의한 후 일사천리로 업안을 처리했다. 오거돈 시장 사퇴로 열릴 부산사장 보권선거에 대비할 뿐만 아니라, 다가올 지방선거와 대통령 선거에서 부산․울산․경남 민심을 잡겠다는 정략을 읽기에 충분했다.

일부 국토부 관료들의 우려와 시민단체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정부와 여당은 천문학적 비용을 투입해 섬을 깎고 바다를 메워 공항을 짓겠다는 의지를 굽히지 않았다.

그런데 신공항이 제주도민에 특별하게 관심을 끄는 것은, 비슷한 신공항 사업을 추진하고 있음에도 지역 출신 3명 국회의원이 두 사업에 너무 다른 태도를 보이기 때문이다. 이들은 여당이 정략적으로 추진하는 가덕도 신공항에는 매우 적극적이었던 반면, 제주 제2공항에 대해서는 그동안 강 건너 불 보듯했다.

박근혜 정부와 원희룡 도정이 지난 2015년 11월 10일, ‘제주 신공항’ 예정지로 서귀포시 성산읍 신산리(실제로는 5개 마을) 일대가 결정한지 5년 넘는 기간, 제주사회는 제2공항 찬성과 반대로 갈등의 소용돌이에 휩싸였다. 다양한 사람들은 가치와 이해관계에 따라 사사건건 충돌했고, 비난과 불신이 꼬리에 꼬리를 물었다. 이 과정에서 정치의 효용은 보이지 않았다.

민주주의는 사회 내부의 사적 갈등을 정치라는 공공의 장으로 올려서 공익을 위한 정책대결로 사회화시킨다. 정치라는 공론의 장은 논쟁과 대화를 통해 타협과 합의점을 만들고, 갈등을 평화적으로 관리하는 기능을 담당한다. 과거 권위주의 체제에서 집권자들이 사회적 갈등을 물리적으로 억압하려 했던 것과 달리, 민주주의 사회는 사회적 갈등을 정치적으로 표출할 수 있도록 공간을 마련해야 한다.

미국 정치학의 대가인 립센은 「정치적 인간」에서 “안정적인 민주주의는 갈등 또는 균열의 표출을 요구한다”라고 했다. 그리고 민주주의는 권력의 평화적 경쟁, 권력 안에 있는 사람들이 내린 결정에 대한 권력 밖에 있는 사람들의 존중, 권력 밖에 있는 사람을 권력 안에 있는 사람들이 인정할 수 있는 정치체계를 요구한다고 했다.

립센의 틀에 따르면, 지난 5년 제주에는 안정적 민주주의가 존재하지 않았다. 갈등이 표출됐을 때 이를 조정하려는 정치인들의 노력이 거의 보이지 않았다. 도의회가 막판에 나서서 조금 활동을 하기는 했지만, 보여주기를 넘어서지 못했다. 국회의원들은 아예 보이지도 않았다.

최근 환경부가 제주 제2공항 전략영향평가 보완서를 반려하면서, 제2공항에 찬성했던 단체들이 거친 행동을 보이고 있다.

오영훈 의원은 지난달 29일 제2공항 대안을 마련하기 위한 토론회를 열기로 했다가 찬성단체 회원들에게 봉변을 당했다. 위성곤 의원은 9일 성산읍에서 찬성단체와 간담회를 가졌는데, 고성만 오갔을 뿐 아무 소득이 없었다. 일부 주민들이 위 의원에게 물병을 던지는 소동까지 일어 경찰이 출동해야 했다.

찬성단체의 행동을 두둔하고나 비난할 생각은 추호도 없다. 다만, 갈등을 조정하고 그 과정에서 타협점을 만들어간다는 정치 본연의 책임을 제대로 수행했는지, 정치인들 스스로 되돌아봐야 한다.

여당 국회의원을 향해 지역구를 가덕도로 옮기라고 했던 야당 도의원들의 주장이 마냥 비아냥은 아니라고 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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