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문학수 할아버지
부친 4.3희생자 보상금 중 일부 마을 후배 위해 장학금 기탁
3년 전부터 '마을 쓰레기' 수거...한남리마을서 공덕비 세워줘
“한남리 동네에 버려진 쓰레기를 줍는 것은 4‧3사건 때 부모를 여의고 홀로 남은 그 때 받은 도움을 돌려드리는 일일 뿐입니다.”
올해로 86세인 문학수 할아버지.
오전 7시30분이 되면 쓰레기 수거 봉투와 집게를 들고 서귀포시 남원읍 한남리사무소 인근 집을 나선다.
차도와 인도, 화단, 하천변 등 한남리 동네 곳곳 발길이 닿은 곳에 버려진 쓰레기를 향해 뚜벅뚜벅 걸어간다.
오전 8시30분쯤 쓰레기봉투가 종이컵, 플라스틱 병, 담배꽁초 등으로 가득 찬다. 쓰레기봉투와 집게를 들고 나섰던 길을 되돌아간다.
오전 9시쯤 한남리사무소 옆 재활용도움센터에 도착, 근무자와 함께 쓰레기를 정리한다.
이렇게 봉사를 한 지도 벌써 만 3년이 흘렀다.
10년 전에는 한남리마을 노인회장으로서 지역 노인들이 노인다운 노인으로, 존경받는 노인으로, 후대를 생각하는 노인으로 자리매김할 수 있게 최선을 다했다.
문 할아버지는 “70대 때 마을 곳곳에 버려진 캔, 담배꽁초, 비닐봉지 등을 보면서 마음이 안 좋았는데 집안일도 많고 노인회장 등의 직책을 맡다보니 개인 시간이 부족했다”라며 “그러다가 80대가 되니 시간이 남기 시작해 마을 안길 등 나무 빼고 모든 것을 다 줍고 있다”라고 전했다.
이어 “처음에 시작할 때는 리사무소를 기준으로 서쪽과 동쪽, 시간이 나는 데로 매일매일 쓰레기 줍기 봉사활동을 했다”라며 “그러다보니까 마을에서 쓰레기봉투 등도 지원해주고 함께 쓰레기를 줍다보니 지금은 일주일에 한 번 정도 돌아다닌다. 청소를 해보니 동네가 깨끗해져서 보기에 좋지만 가장 행복한 것은 저”라며 봉사활동의 소감을 말했다.
오병국 한남리노인회장은 “문 전 노인회장은 86세인데도 불구하고 한남리 지역을 두루 살피며 봉사활동을 해오고 계신 분”이라며 “그의 쓰레기 수거 봉사활동은 마을에 널리 알려져 있는 사항으로 저 자신도 본을 받아서 봉사활동을 하고 노인회에도 힘이 되는 분”이라고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서귀포시 남원읍 한남리에서 평생을 살아 온 문 할아버지에게 지난해 ‘희소식’이 전해졌다.
제주 4‧3 사건 때 돌아가신 부친이 4‧3사건 희생자로 인정되고 보상금을 수령하게 됐다는 것이다.
증언 등에 따르면 당시 문 할아버지의 부친은 중산간 마을이던 한남리민들과 진압군에 의해 희생을 당한 것으로 전해졌다.
초등학교도 졸업하지 못 한 문 할아버지는 4·3희생자 보상금 수령액 중 3000만원을 한남리마을회에 한남리 후배 세대를 위한 장학기금으로 기탁했다.
문 할아버지는 “‘제주 4‧3’ 사건 때 부모님을 여의고 11살 어린 나이에 혼자 살았다. 부모 없는 저를 한남리 주민들이 도와줘서 6남매를 두고 다복한 가정을 꾸렸다”라며 눈시울을 붉히며 말을 잇지 못했다.
이어 “지금 생각해도 가슴이 너무 아프다. 30대의 아버지가 돌아가시면서 놓고 간 돈이다. 평생 만져보지도 못한 돈이 나왔다. 함부로 쓸 수 없다”라고 장학기금 기탁 이유를 밝혔다.
이러한 사연에 한남리 마을에서는 문 할아버지의 봉사정신과 후배사랑을 기려 마을회관 입구에 공덕비를 설치했다.
공덕비에는 ‘남평문씨 50세손으로 1938년 서귀포시 남원읍 한남리에서 외아들로 태어났으나 11세 되던 해 제주4‧3사건으로 부모님을 여의게 되고 홀로 지내게 됐다. 어려운 환경에서도 장성해 결혼하고 6남매를 두며 다복한 가정을 꾸렸다. 그런 와중에 2023년 제주4‧3사건 희생자 보상금을 수령하게 됐고 한남리 후배들을 위해 3000만원을 장학기금으로 기탁했다’라고 적혔다.
고남수 전 한남리장은 “동네에서 청소하는 것을 봤는데 처음에는 노인일자리사업의 일환으로 돈을 받으면서 일을 하시는 줄 알았다”라며 “하지만 봉사활동이라는 것을 1년 전에야 알게 됐다. 정말 대단하신 일을 하시는 것이고 마을 자랑이다”라고 말했다.
오원명 전 한남리노인회장은 “공공근로를 하는 사람들보다 훨씬 노력하고 있다. 봉사활동을 하다보니 아침밥도 거를 정도로 열심히 하면서 고생을 하고 있다”라며 “후배들에게 마을 발전 귀감을 사고 있다. 노인회도 같이 봉사활동을 하고 있다”라고 전했다.
고희연 전 한남리노인회장은 “마을 안길 등 청소를 하는 것은 아무나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라며 “또 게이트볼 회원 최고 연장자로서 심판 자격증도 있고 많은 도움을 주고 있다”라고 설명했다.
김근현 한남리노인회 사무장은 “봉사는 아무나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진짜 대단하다”라며 “대단하다는 말로 전부를 설명할 순 없지만 쓰레기를 줍는 것을 보면 저도 감동을 많이 한다”라고 침이 마르도록 칭찬했다.
이에 대해 문 할아버지 “봉사활동을 하면서 제일 힘나는 것은 작업을 하러 다닐 때 만나는 주민들이 ‘감사해요’, ‘너무 고생하세요’라는 말”이라며 “앞으로도 몸이 허락하는 한은 조금 더 해볼까 한다”라고 말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