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특별자치도가 출범 20여년 만에 기초자치단체를 설치하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다. 광역자치단체였던 제주도와 기초자치단체였던 제주시·서귀포시·북제주군·남제주군은 2006년 ‘제주특별자치도’로 통합됐다. 
그동안 행정시장 직선제나 지방의회 구성 여부를 두고 행정체제 개편 논의가 이어졌으나, 번번이 정치적 판단에 가로막혔다. 

2010년 민선 5기 제주도행정체제개편위원회와 2017년 민선 6기 제주도 행정체제개편위원회는 각각 행정시장 직선제(의회 미구성)를 주요 내용으로 하는 행정체제 개편안을 제주도에 권고했다. 

민선 5기 제주도는 민선5기 제주도행정체제개편위원회가, 민선6·7기 제주도는 민선6기 제주도행정체제개편위원회가 각각 제안한 행정체제 개편 권고안을 수용했다. 하지만 행정체제 개편은 도민의 자기 결정권을 핵심 공약으로 내세웠던 정치권이 도민 의견보다 정치적 상황 등을 우선으로 하거나, 주민자치 강화를 내건 정부가 대의기관인 도의회가 동의한 사안도 실행을 거부하면서 진척을 보이지 못했다.

민선8기 들어서도 제주형 행정체제 개편 절차가 진행되고 있다. 민선 5~7기와 달리 민선 8기 제주도는 이전 제주도정이 추진했던 ‘행정시장 직선제+의회 미구성’이 아니라, ‘시장 직선+기초의회’ 등 기초자치단체를 설치하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다. 과거로의 회귀가 아닌, 주민투표를 통해 제주 지역 실정에 맞는 행정체제를 주민이 직접 결정하는 구조를 설계하겠다는 입장이다.

그러나 개편 논의가 진전되면서 서귀포 시민의 우려도 커지고 있다. 서귀포시를 기초자치단체로 전환하면서 시청사와 시의회 청사 계획이 논의되고 있는데, 이 과정에서 제주도 감사위원회의 제주 이전 방침이 드러났기 때문이다. 도 감사위원회가 현재 위치한 건물은 서귀포시의회 청사로 활용할 예정이라는 것이다.

제주특별자치도 출범 당시 서귀포시로 이전했던 제주도 4개 부서 중 문화관광스포츠국과 사업운영본부는 이미 사라졌고, 현재 남아 있는 건 감사위원회와 농업기술원뿐이다. 정부의 지역균형 발전 차원에서 조성된 제주혁신도시에 입주했던 재외동포재단도 정부의 재외동포청 신설 방침에 따라 폐지되며 기능이 인천에 신설한 재외동포청으로 흡수됐다. 

이는 명백히 지방분권과 균형발전의 원칙에 반하는 조치다. 현행 ‘지방자치분권 및 지역균형발전에 관한 특별법’은 지방자치단체의 통합으로 인해 종전의 지방자치단체 또는 특정 지역의 행정상·재정상 이익이 상실되거나 그 지역 주민에게 새로운 부담이 추가돼서는 안 된다는 ‘불이익 배제의 원칙’을 명확하게 명시하고 있다. 통합이 아니라, 기초자치단체 설치에 따른 분할 과정에서도 특정 지역의 행정적 이익이 침해돼서는 안 된다.

제주형 행정체제 개편은 주민의 자기결정권을 존중하는 동시에, 지역 간 균형발전이라는 국가적 가치도 함께 실현해야 한다. 서귀포 지역에 있는 기관을 은근슬쩍 제주시로 이전하면서 행정의 중심을 다시 편중시켜선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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