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거 겨울철을 대표하던 감귤이 이제는 ‘여름 과일’로도 자리 잡았다. 시설 재배 면적이 늘면서 사계절 내내 감귤을 맛볼 수 있는 시대가 열린 것이다. 올해산 감귤은 지난 4월 28일 서귀포시 남원읍 신흥리 농가의 하우스 감귤 수확으로 출하가 시작됐다. 하우스 감귤은 가온과 비가림 재배를 거쳐 노지 극조생·조생 감귤에 이어 황금향, 레드향, 한라봉, 천혜향 등 만감류로 이어지며 4월부터 이듬해 3월까지 연중 출하된다.

감귤은 품종은 달라도 출하 시기가 이어지기 때문에 가격과 소비가 연쇄적으로 영향을 받는다. 특정 품종의 품질이 떨어지면 이후 출하되는 감귤류 소비까지 위축될 수 있다. 반대로 맛있는 감귤이 좋은 반응을 얻으면 다른 품종의 소비도 덩달아 늘어난다. 이런 이유로 행정은 비상품 감귤 출하를 강력히 제한하고 있다. 비상품 감귤은 단순히 외형이 좋지 않은 ‘못난이 감귤’이 아니다. 덜 익은 감귤을 수확해 착색제를 사용하는 등 이른바 ‘비양심 감귤’이 문제다. 이러한 감귤은 당도와 품질이 떨어져 소비자의 외면을 받고, 전체 감귤 이미지에 타격을 준다.

하우스 감귤 출하가 한창이지만, 벌써 11월 이후 수확하는 노지 감귤 포전거래(밭떼기 거래)가 이뤄지고 있다. 올해 포전거래 가격은 3.75㎏(1관)당 평균 4500~5000원으로 예년보다 높은 수준이다. 이는 노지 감귤 생산량이 전년 수준에 머물 것이라는 전망과 최근 몇 년간 ‘맛 좋은 감귤’ 생산 기조가 맞물린 결과로 분석된다.

문제는 일부 유통인과 농가가 추석 대목을 노려 덜 익은 노지 극조생 감귤을 출하하려는 시도다. 올해 추석은 10월 6일로, 통상적으로 극조생 노지 감귤을 수확하는 10월 중순보다 조금 이르다. 추석은 과일 소비가 급증하는 대목이기도 하다. 

비양심 감귤이 유통된다면 이후 노지 조생 감귤과 만감류 시장까지 줄줄이 피해를 볼 수 있다.  소비자 신뢰를 무너뜨릴 뿐 아니라, 최근 형성된 고품질 감귤 이미지와 시장 가격을 한순간에 무너뜨릴 수 있는 위험한 선택이다.

또한 감귤 산업의 구조적 문제 중 하나는 가격 안정 장치의 부재다. 포전거래를 통해 선계약한 유통인 가운데 일부는 가격 하락 시 손실을 피하기 위해 농가에 계약가 인하를 요구하거나 수확을 미루기도 한다. 이 과정에서 농가는 가격 협상에서 불리한 입장에 놓이고, 품질 관리에도 차질이 빚어진다. 특히 고령 농가의 경우 계약서 작성이나 거래 조건 협상에서 취약할 수밖에 없어 행정의 제도적 지원이 절실하다.

한 번 무너진 신뢰를 회복하려면 엄청난 시간과 비용이 들 수밖에 없다. 행정은 감귤 산업 보호를 위해 비상품 감귤 유통을 철저히 차단하고, 표준 계약서 보급과 유통 질서 관리 등 실질적인 지원책을 강화해야 한다.

유통인과 농가도 눈앞의 이익만을 좇아서는 안 된다. 감귤이 사계절 과일로 자리 잡은 지금이야말로 ‘양보다 질’의 생산·유통 체계를 확립해 세계 시장에서도 경쟁할 수 있는 기반을 다져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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