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때도, 지금도 사랑하멍’
경증 치매 어르신 그림책
제주어로 인생 구술ㆍ기록
창작활동으로 치매 완화
오는 23일, 서귀포시 모슬포의 제주은행 2층 전시실에서는 특별한 출간 기념 행사가 열릴 예정이다.
주인공은 다름 아닌 서귀포시서부보건소 치매안심센터의 ‘북(book)돋는 기억방’ 프로그램에 참여한 다섯 명의 어르신들이다.
이들이 직접 참여한 그림책 제작 프로젝트 ‘그때도, 지금도 사랑하멍’은 단순한 창작활동을 넘어, 세월을 통과한 기억과 감정을 한 권의 책으로 엮어낸 감동적인 여정이다.
▲치매 예방을 넘은 삶의 자서전
이번 프로젝트는 서귀포시서부보건소 치매안심센터(이하 서부센터)가 운영한 비약물 치매예방 프로그램의 일환으로 기획됐다. 지난 2월부터 운영을 시작한 ‘북돋는 기억방’은 경증치매 어르신을 대상으로 운동과 미술, 음악 등의 비약물치료를 통해 경증 치매증상을 완화하고 중증으로의 진행을 늦추는 것이 목표다.
이 프로그램 중 어르신이 직접 자신의 삶의 흔적을 그림으로 표현하고 구술한 내용을 그림책으로 펴낸 것이 이번 ‘그때도, 지금도 사랑하멍’ 출간 프로젝트다.
프로그램에 참여한 이향순 어르신(82)은 “남편과 사별한 후 우울증이 왔고 그게 경증 치매로 이어진 것 같다”며, “어느 순간부터 갑자기 현관 비밀번호나 아들 생일이 잘 생각이 안 나더라. 그런데 이 활동을 하면서 다시 살아난 느낌이었다”고 말했다. 집에만 있지 말고 바깥 활동을 하라는 남동생의 권유로 시작한 활동이, 지금은 삶의 활력소가 됐다.
이향순 어르신은 “센터 직원들이 딸같다. 편하게 잘해줘서 여기 나오면 왠지 마음이 놓인다”며 미소지었다.
책의 제목은 제주어를 활용해 ‘그때도, 지금도 사랑한다’는 뜻을 담고 있다. 각 어르신은 자신의 인생에서 빛났던 순간, 기억에 남는 사람이나 장소를 주제로 그림을 그리고 구술하는 형식으로 책을 만들었다.
프로젝트의 실무를 맡은 서부센터의 김동은 주무관은 “매년 프로그램을 진행하면서 어르신들에게 작은 선물 하나씩을 남겨드리고 싶었다. 어르신들의 인생 기억을 북돋는다는 의미와 그 내용을 잘 담아보고 싶었다”고 사업의 의미를 설명했다.
▲새로운 자극이 만드는 변화
한지영 서부센터팀장은 “프로그램에 새로운 어르신이 참여하면 서로 챙겨주면서 유대감이 생긴다”며 “그런 사회적 관계가 새로운 자극이 되면서 치료에 도움이 된다”고 설명했다.
비약물치료가 주목받는 또 다른 이유는 바로 치매 약물치료에 드는 고액의 비용 때문이다.
예를 들어, 최근 출시된 치매 치료 주사제 ‘레켐비’의 경우, 1회 투약 비용이 약 100만원에 달하며 2주마다 1회씩 투약이 권장된다. 이를 기준으로 계산하면 1년에 약 2400만원 가량이 소요된다. 여기에 MRI 촬영과 각종 검사 등 부대비용까지 포함되면 전체 치료비는 일반인이 감당하기 어려운 수준으로 치솟는다.
한지영 서부센터팀장은 “새로운 자극을 계속 주어지면 뇌가 활성화된다. 기능개선제를 같이 복용하면서 비약물치료를 병행하면 확실히 효과가 있다는 통계가 있다”고 설명했다.
마지막으로 한 팀장은 치매를 숨기거나 부끄러워할 일이 아니라고 강조했다. 한 팀장은 “초기에는 경로당을 찾아 치매안심센터에서 왔다하면 어르신들이 거부감을 표현했다. 하지만 지금은 먼저 검사를 요청하는 경우가 많다”며 “작지만 분명한 인식 변화가 시작된 것”이라고 분석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