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민참여예산은 예산 편성 과정에 주민이 직접 참여해 지역에 필요한 사업을 선정하는 제도다. 제주특별법 제127조(예산편성 과정의 주민참여), 지방재정법 제39조(지방예산 편성 과정의 주민 참여), 제주특별자치도 주민참여예산제 운영 조례를 근거로 한다. 모든 시민은 주민참여예산제에 참여할 권리가 있다. 예산은 시민이 낸 세금을 어디에 사용할지 정하는 계획으로, 시민이 낸 돈을 원하는 분야에 쓰도록 결정한다는 의미를 지닌다.

제주도 주민참여예산은 2012년 2월 제1기 주민참여예산 연구회 구성에 이어 같은 해 3월 제1기 주민참여예산위원회가 출범하면서 본격화했다. 2013년부터 2021년까지 모두 2907건 1718억 원이 선정됐다. 이어 2022년 357건 200억 원, 2023년 382건 225억 원, 2024년 431건 259억 원, 2025년 516건 285억 원이 결정됐다. 내년 주민참여예산은 540건 315억 원으로 역대 최대 규모다. 매년 주민참여예산이 늘어나면서, 시민이 직접 예산 편성 과정에 참여하는 권리가 강화되고 있다.

행정은 혁신을 강조한다. 하지만 변화를 내세우면서 그동안 해 오던 사업을 중단하거나, 새로운 사업을 개발하는 것은 쉽지 않다. 실패 위험과 예산 낭비 비판, 특정 지역 편의시설 설치 시 특혜 논란 등이 부담으로 작용하기 때문이다. 반대로 모든 시민을 대상으로 하는 사업만 편성하다 보면 생활 현장의 불편이 해소되지 못한다. 말 그대로 진퇴양난이다. 주민참여예산은 이러한 한계를 보완할 수 있는 제도다.

제주도 전체 예산 가운데 일부를 주민이 제안한 사업에 활용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주민참여예산이다. 내년 예산은 올해 본예산 7조5783억원 규모보다 증가할 것으로 전망된다. 7조원이 넘는 제주도 예산과 비교하면 주민참여예산 비율은 아직 미미한 수준이다. 하지만 내년 제주도 주민참여예산 315억원은 절대로 적지 않은 금액이다. 주민이 필요하다고 느끼는 분야에 직접 쓰일 수 있는 재원이라는 점에서 의미가 더 크다.

그러나 주민참여예산에는 행정이 자체 예산으로 추진할 수 있는 사업도 일부 포함돼 있다. 경관조명 설치, 산책로 정비, 초등학교 통학로 조성, 보행 환경 정비, 위험도로 개선, 가로수 및 칡넝쿨 정비 사업 등은 본래 행정이 예산을 확보해 추진해야 했을 사안이다. 그럼에도 시민이 주민참여예산을 통해 이런 사업에 예산 편성을 제안한 이유는 행정이 그동안 개선하지 않았다는 것을 방증하는 것이기도 하다. 행정에 지속적으로 요구해도 돌아오는 답은 ‘예산이 없다’였다. 

주민참여예산에 선정된 사업은 어느 것 하나 소홀히 할 수 없이 모두 필요한 것이다. 다만 그동안 행정이 더 적극적으로 예산을 확보했더라면 시민이 주민참여예산을 더 많은 분야에 활용할 수 있을 것이라는 아쉬움은 남는다. 주민참여예산은 행정 신뢰도를 높이고 시민 참여를 확대하는 제도로 자리 잡아야 한다. 행정은 주민참여예산을 ‘시민 참여 확대’라는 취지 그대로 운용해야지, 손쉬운 예산 확보 수단으로 전락시켜서는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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