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영훈 제주도지사가 제1호 공약으로 내세웠던 제주형 행정체제 개편이 좌절됐다. 오영훈 지사는 지난달 30일 제주도청 기자실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기초자치단체 출범은 민선 9기 도정으로 넘기게 됐다”라고 밝혔다. 정치인으로서는 1호 공약을 포기하는 것이 쉽지 않은 결정이다. 그렇다고 공약 이행만을 위해 제주형 행정체제 개편을 밀어붙여서도 안 된다. 정치인의 공약은 정치인 자신이 아니라, 유권자인 제주도민을 위한 것이다. 아무리 1호 공약이라고 하더라도 제주도민이 아니라고 하면 중단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그러나 제주형 행정체제 개편 추진 중단 선언은 아쉬움도 남겼다. 제주형 행정체제 개편 중단은 애초 계획했던 내년 도입 목표를 이행하기 위한 절차를 이행하는 데 물리적인 시간이 부족하다는 것이 표면적인 이유다. 하지만 제주형 행정체제 개편 무산의 원인은 제주시를 동제주시와 서제주시로 나누는 행정 구역 조정이라는 것이 중론이다.

제주도는 2022년 8월 30일 행정체제 개편위원회를 구성했다. 위원회는 도민 토론회와 여론조사 등 공론화와 내부 논의 등을 거쳐 지난해 1월 3개 기초자치단체 설치 등을 주요 내용으로 하는 행정체제 개편안을 제주도에 권고했다. 또한 위원회는 제주시를 동제주시와 서제주시로 나누고, 서귀포시는 그대로 두는 3개 기초자치단체를 제안했다. 일부에선 인구수만 기준으로 한 권역 나누기라는 비판이 있었지만, 도민 공론화 과정을 거쳐 도출한 결론을 제주도는 수용했다.

김한규 더불어민주당 국회의원(제주시을)은 지난해 11월 제주시와 서귀포시를 기초자치단체로 만들어 주민이 시장을 직접 선출하도록 하되, 현행 제주시, 서귀포시의 행정구역을 유지하는 내용의 이른바 ‘제주시 쪼개기 방지법’을 발의했다. 이후 제주형 행정체제 개편은 기초자치단체 설치보다는 제주시를 나누느냐 마느냐를 놓고 의견이 갈렸다.

기초자치단체 설치를 주요 내용으로 하는 제주형 행정체제 개편이 행정 구역 조정에 막혀 원점으로 돌아갔다. 2010년 출범한 민선 5기 제주도정 이후 민선 8기까지 15년째 행정체제 개편은 논의 단계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제주특별자치도가 출범한 이후 서귀포시가 인구수 논리 등에 밀려 행·재정적으로 소외당한다는 인식이 서귀포 시민 사이에 팽배하다. 이로 인해 일부 서귀포 시민은 행정시장 직선제 또는 기초자치단체 설치 등을 요구하고 있다. 물론 현재 단일광역체제를 유지해야 한다는 의견도 존재한다.

정치인은 선거 때마다 제주특별자치도의 완성과 풀뿌리 민주주의 회복 등을 위한 행정체제 개편을 주요 공약으로 제시한다. 그만큼 제주도민 사회가 현재 단일 광역자치단체 행정체제의 문제를 인식하고 있다는 방증이다. 

도지사를 뽑는 제9회 전국동시지방선거가 8개월도 남지 않았다. 내년 지방선거에 나서는 후보들도 어김없이 행정체제 개편을 핵심 공약으로 내놓을 것으로 예상된다. 이제는 정치적 유불리가 아닌, 도민의 이익을 우선으로 결과물을 내놓아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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