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귀포시가 낳은 미술계의 거장 변시지 화백의 미술관 건립을 놓고 요즘 제주도내 문화예술계가 술렁이고 있다. 변시지 화백이 제주도를 대표하는 현존 최고의 예술가에 손꼽히는 데다, 국내 화단에서 차지하는 그의 비중을 감안하면 일반인들도 큰 관심을 보이며 추이를 관망하고 있다.

이번 미술관 건립 논란은 변 화백과 구두약정을 맺은 서귀포시가 건립계획에 다소 우물쭈물하는 사이에 제주시와 도외 공공기관 등이 이를 대신 유치하려 시도하는 것으로 요약된다. 제주도의회가 지난해 말 설계 용역비를 대폭 삭감하고 재정위기를 이유로 도정이 사업비 투자를 머뭇거리며 사업추진이 게걸음을 걷고 있다.

이러는 사이에 제주시와 도외 공공기관 등이 변 화백의 미술관 유치에 뒤늦게 뛰어들면서 더욱 혼선이 초래되고 있다. 당초 서귀포에 작품 기증의사를 전달했던 거장도 사업의 더딘 진행과정을 지켜보며 다소 흔들리는 모습을 보여 주위를 안타깝게 하고 있다.

어찌 보면 이번 논란은 기초자치권 없는 서귀포가 뚜렷한 권한 없이 제주도와 도의회 등에 휘둘리는 양상을 드러내고 있는 셈이다. 변 화백은 주위의 온갖 유혹을 뿌리치고 자신이 나고 자란 서귀포에만 작품기증 의사를 밝혔지만, 행정시장이 뒤바뀌며 구두약속은 점차 입가에 물기가 마르고 있다. 과거 민선시장이 의욕적으로 이중섭 미술관이나 서복전시관, 소암기념관 등을 건립하던 모습은 더 이상 찾아볼 수 없게 됐다.

산남과 산북간 경제격차가 문화예술 분야에까지 점차 파급되는 것도 문제다. 지난해 도립미술관 건립과정에서 서귀포시 지역여건을 무시하고 서귀포시 3개 미술관 등을 산하기관으로 흡수하려다 시민 반발에 부딪혀 포기한 선례가 기억에 생생하다.

어찌 보면 이번 논란의 배경에는 변 화백의 명성에 기대어, 당초 서귀포시에 건립키로 한 미술관을 제주시 등 여타 지역으로 옮기려는 일부 세력의 움직임도 얼핏 엿보인다. 6․ 2 지방선거를 계기로 재정위기가 강조되면서 사업 추진에 의욕이 저하된 서귀포시의 소극적 자세도 안타깝다. 하나 분명한 것은 재정여건 등으로 사업기간이 다소 늦춰지더라도 변시지 미술관은 반드시 서귀포시에 건립돼야 한다는 사실이다. 이는 변 화백 스스로 ‘처음처럼’ 자세로 서귀포시장을 만나 기증약속을 전달했던 까닭에서다. 

저작권자 © 서귀포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