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 현대사에 씻을 수 없는 대참사인 남영호 사건이 발발한지 어느덧 40주년을 맞이했다. 무려 326명의 목숨을 앗아간 이번 사건은 갈수록 도민들의 뇌리에서 잊혀가고 있다. 유족들도 숯덩이 같은 회한을 가슴에 품은 채 하나 둘씩 세상을 뜨고 있다. 본지가 2회에 걸쳐 기획특집으로 다룬 것이, 그나마 도민들에게 40년 전의 대참사를 얼핏 떠올리는 계기가 될 뿐이었다.
도민들에게 그냥 지나쳤을 법한 남영호 사건이 또 다시 주목받고 있는 이유는 사건 발생 이후의 처리과정이 여전히 상식 범위를 벗어나고 있다는 점에서다. 무리한 과적과 승선인원 초과, 항해 부주의, 치안당국의 늑장 대응 등이 빚어낸 ‘인재’(人災)임이 분명한 데도 그동안 누구 하나 책임을 지는 이 없었다.
300여구의 시신마저 찾을 길 없는 유족들을 더욱 분노케 하는 것은 끔찍한 대참사를 겪고난 뒤에도 행정기관 등이 오로지 망각으로 일관하는 태도를 취하는 때문. 사건발발 1년째인 위령탑 제막식에서 당시 도지사가 ‘슬픔을 극복하고 지성으로 바다를 다스려 힘차게 전진하는 탑으로 남겨야 한다.’고 역설했건만 이내 휴지조각이 되고 말았다. 관광미항으로 조성 예정인 서귀포항에 세워진 위령탑이 외부인들에 혐오감을 줄 수 있다는 이유로 11년 만에 중산간 골프장 부지로 내쫓기게 된 것이다.
위령탑이 바다에서 산으로 감쪽같이 옮겨지는 바람에, 유족들은 진입로조차 찾기 힘들어 구걸하듯 위령제를 치르는 사태가 수십년 째 재연되고 있다. 세계보건기구가 선정한 세계안전도시 제주도에서 지금까지 이런 일이 벌어지고 있다니, 그저 말문이 막힐 지경이다. 고령이 된 유족들 몇몇이 힘들게 공동묘지와 위령탑 주변에서 수년 째 벌초작업을 벌이고 있다는 소식에 안쓰러울 뿐이다.
남영호 사건이 40주년을 맞은 시점에서 이미 지나간 일이라는 듯 행정당국의 팔짱을 끼는 듯한 태도는 분명히 짚고 넘어가야 할 것이다. 과거의 역사적 사실에서 교훈을 얻지 못한다면 나쁜 역사는 계속 반복된다는 교훈을 새삼 들춰낼 필요도 없다. 최근 제주 4․ 3이 재조명받는 것을 계기로 도내 읍면지역 주요 도로변과 옛 학살터 일대에 4․3 위령탑이 건립되면서 도내 후손들과 관광객들의 새로운 관심을 불러일으키는 것과 대조를 이루고 있다.
남영호 사건이 워낙 끔찍한 탓에 다시 떠올리기 싫다는듯 무관심으로 일관한다면 제2, 제3의 유사 사건이 재발하지 않으리란 보장이 없다. 그나마 소수의 유족이라도 생존한 시점에서 유족들의 회한을 다소나마 덜어드려야 할 것이다. 아울러 대참사를 역사적 교훈으로 승화시킬 수 있도록 다각적인 방안 마련이 거듭 요구되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