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으로 놀랍고도 비통하다. 설마 했던 강정 구럼비 해안이 화약덩이에 의해 갈기갈기 찢겨나가고 있다. 수천 년 바다생명들의 안식처요 주민들의 생존 터전이 발파되는 순간, 강정 주민들은 억장이 무너지는 심정을 느꼈으리라. 아니, 제주도민들도 지난 5년간 이끌어 온 강정 해군기지 문제가 이런 단계에까지 도달할 줄은 차마 상상도 못했으리라. 60여 년 전 4.3 당시 동족의 총칼에 의해 스러져간 조상들의 원혼이 다시 망령처럼 떠오르는 느낌이다.

분통한 심정을 애써 가다듬고 강정 해군기지 문제가 이토록 파국단계를 맞게 된 과정에 대해 잠시 반추해 본다. 해군기지가 평화의 섬에 위배된다, 평화를 지키려면 해군기지가 필수라는 등의 해묵은 논쟁은 재삼 거론하고 싶지 않다. 그동안 해군기지가 후보지를 수차례 바꾸며 숱한 절차상 하자에도 국책사업이란 이유로 일방 추진돼 온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당사자인 강정 주민들 간 극심한 갈등으로 마을공동체는 무너졌고, 정부와 해군의 독주가 이어져 왔다. 이 과정에서 여여 정치권에서 극적인 타협점으로 제시된 것이 이른바 민군복합형 관광미항 개념. 물론 강정 주민과 종교계 등에서는 해군기지 전면 재검토를 줄곧 주장했지만, 해군은 끝내 민군복합형 관광미항 마저 내팽겨 버렸다. 정치권의 관련예산 대폭 삭감, 전국적인 반대 확산 움직임, 제주도 등의 민군복합항 검증과정 오류지적에 대해서도 해군은 끝내 모르쇠로 일관해 왔다.

지난 5년 간 뾰족한 돌파구 없이 해군기지 문제로 시달려 온 도민들은 차기 총선이나 대선에서 공론화에 의해 매듭짓기를 바라는 심정이었다. 주민과의 소통을 외면하고 어설픈 안보와 경제논리로만 해군기지 필요성을 주입하는 현 정부에 대해서는 불신의 골이 너무 깊었던 까닭에서다. 하지만 7일 단행된 전격적인 구럼비 발파는 이 모든 기대를 한 순간에 물거품으로 만들었다. 앞으로 도민들은 5개월간 구럼비 바위가 쪼개지는 모습을 분통 터지듯 지켜봐야 할 판이다.

이 시점에서 제주도는 결국 중앙정부의 눈에는 변방의 작은 섬에 불과하다는 인식이 불쑥 솟구친다. 제주도는 지정학적 특수성으로 한라산이 전국의 태풍을 막아주고, 해군기지가 전 국민을 보호해주는 역할에 충실하면 된다는 식이다. 마치 제주도민의 소외와 고통은 우리가 관여할 바 아니라는 태도다.

이번 기회에 대다수 도민들은 제주특별자치도가 장밋빛 환상만 심어준 말장난이었음을 새삼 곱씹게 된다. 중앙에서 생색을 내는 특별자치도 명칭은 결코 거저 얻는 게 아니라, 도민들 스스로의 단합된 역량에 의해 쟁취하는 것임을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 정부와 인식전환 자세와 함께 도민들의 각성과 분발을 촉구하는 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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