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해군기지 건설이란 광풍이 서귀포시 강정마을을 집어삼키면서 강정 주민들이 겪고 있는 고통은 이루 헤아리기 힘들 정도다.

지난 5년간 제주도정은 주민갈등 해결을 목소리 높여 외쳤건만, 갈등해결은커녕 도정과 정부를 향한 주민들의 불신은 더욱 골을 깊게 하고 있다. 해군기지 찬반을 둘러싼 주민들의 갈등도 워낙 뿌리 깊어, 조상 대대의 공동체가 사실상 와해상태에 빠져들고 있다.

2009년 9월, 서귀포신문은 4회에 걸쳐 찢겨진 강정, 희망은 있는가? 기획기사를 보도했다. 당시는 제주도지사 주민소환이 무산된 직후 해군기지 공사강행이 이뤄지던 시기였다. 정부와 도정이 강정주민 갈등해소에 손을 놓던 시기에 강정마을과 주민들의 실태를 적나라하게 파헤친 기획보도여서 도민사회에 적잖은 파장을 불러 일으켰다.  

무엇보다 이번 기획보도에서 도민들에게 가장 충격을 준 것은 강정주민들을 대상으로 한 정신건강 실태조사 결과였다. 주민 110명을 대상으로 전문가의 도움으로 정신심리 설문을 실시한 결과, 전체의 75.5%가 적대감이나 우울, 불안, 강박 등 정신건강에 문제가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최근 한 달 간 자살을 생각한 적 있는 주민은 무려 44%에 달해 주민들의 골병이 얼마나 심각한 상태인지를 여지없이 드러내 보였다.

서귀포신문의 당시 설문조사 결과는 도민사회는 물론, 전국적으로도 엄청난 관심을 불러일으키며 강정 주민갈등을 새롭게 인식케 하는 계기를 만들었다. 지금까지도 중앙 언론과 학자들은 서귀포신문이 처음 시도한 설문조사 결과를 수차례 인용하고 있지만, 구체적 출처를 밝히지 않음은 다소 유감이다.

최근 한 의학연구소에서 강정주민들의 정신건강 실태조사 결과를 3년 만에 다시 발표했다. 강정 주민과 현지 자원봉사자 등 128명을 대상으로 한 이번 조사에서도 주민들의 정신건강 실태는 여전히 심각한 것으로 나타났다. 주민들의 정신건강이 점차 만성화 경향을 띠고 있으며, 주민 상당수가 해군기지 건설이 마을발전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의견을 제시했다. 

최근 국정감사를 통해 해군기지 사업에 대한 전반적인 문제가 도마 위에 올랐지만, 대선 정국을 맞아 대권 후보들은 해군기지 문제에 대해 다소 몸을 사리고 있는 분위기다. 치유하기 힘든 마음의 병을 지닌 강정 주민들이 법적 소송에 휘말리며 정신과 육체적으로 갈수록 피폐해지고 있지만, 누구 하나 주민갈등 해소에 선뜻 앞장서지 않고 있다. 해군기지 건설 찬반을 떠나, 제주도민의 한 사람으로 강정 주민의 고통과 갈등을 함께 나누는 사회적 여건조상이 아쉽게 생각된다.

저작권자 © 서귀포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