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정에 살어리랏다 ⑨ 윤용택 교수…“강정은 살아있다”

▲ 윤용택 교수.

강정. 제주 지역 갈등의 한 중심에 서 있지만 서귀포 주민들조차 잘 모르는 마을. 그래서 할 말이 참 많은 땅. 이 곳에서 20년, 타향살이 20년, 그리고 또 다시 찾은 고향 20년. 윤용택 제주대(철학과) 교수는 얼마 남지 않았다는 심정에, 틈만 나면 강정으로 간다. 늦었으나 마을을 기억하고 싶었다. 위기의 대지에 자연 곳곳을 알리고 싶었다.

환경운동연합 공동의장인 윤 교수는 해군기지 반대 운동의 선봉장에 섰다. 해군기지 입지가 화순이든, 위미이든 반대를 했을 터이지만, 그의 고향인 강정마을에 들어선다는 건 3년이 지난 지금도 “꿈만 같다”고 했다. 자신의 철학과 신념이 ‘고향’이란 이름 아래 더 절절한 까닭이다. 제주에 몇 안 되는 저항적 지식인으로, 그는 강정에 하나의 상징이 됐다.

“앞으로 3~4년 후엔 이 모습을 볼 수 없을지 모른다고 생각했죠. 그러기 전에 많이 봐두자고 되뇌였습니다. 강정에 가면 참으로 많은 모습들이 말을 걸어와요. 바위, 냇물, 꽃, 파도, 붉은발말똥게들…. 이들은 다 살아 있는 것처럼 내게 ‘나 여기 있어, 내가 살아 있다는 걸 알려줘’라고 요구하는 것 같았어요.”

기록에 담아두려는 시도는 그렇게 시작됐다. 사진에 별 솜씨가 없지만 그는 강정을 돌아다니면서 곳곳을 찍어 뒀다. 지난 3년간 저장해 놓은 사진만 수 천장이 넘는다. 일부는 지난 2월 사진 슬라이드 전시회를 열었고, DVD 형태로 영상화하기도 했다. ‘생명평화의 섬 제주를 꿈꾸며’라는 책도 내어, 강정마을을 기록하고 알리는 일에 몰두했다.

“전국에서 가장 큰 현안 문제로 꼽는게 4대강 의제였죠. 제주는 4대강이 없기 때문에 강 건너 불 구경 식으로 사안을 바라봅니다. 해군기지 문제도 마찬가지에요. 주민들이 왜 반대를 하고, 왜 찬성을 하는지, 어째서 갈등을 겪고 있는지 아는 바가 없죠. 제일 아쉬운 게 진실이라는 것입니다. 진정 마음을 터놓고 진실을 이해하는 계기가 주어지지 않았어요.”

 

▲ 생각에 잠긴 윤 교수.

 

해군기지 담론에 침묵 또는 반감을 드러내는 대학 사회에도 몇 마디 건넸다. “지식인들이 정치바람을 많이 탑니다. 예민한 현안 문제에 대해서는 소신껏 의견을 표명하기보다 현 도정을 지지하느냐, 마느냐로 개인의 입장이 엇갈리니까요. 용역이나 프로젝트 등 각 사업에 연구비가 도에 집중되다보니 한계가 있는 것 같습니다.”

그가 제주 해군기지 건설을 반대하는 건 단순한 명분론 때문이 아니다. 평화의 섬이 분쟁의 섬보다 도민들의 삶의 질을 높일 것이라 믿는다. 천안함 참사 이후에 북한을 염두에 둔다면 대양보다 연안에 국방력을 강화하는 것이 국가 안보적으로 낫다고 주장한다. 제주에 중국과 일본을 견제하기 위한 해군기지가 들어선다면 관광객의 감소도 우려된다. 합리성이 결여된 정책 결정 방식으로 인한 공동체 갈등도 그가 꼽는 이유다.

현 시장이 공동체 갈등에 방점을 둔 것에 공감을 한다고 했다. “극심한 갈등의 문제는 해군기지 건설 이후에도 반드시 풀어야 할 과제입니다. 서로 의견 대립으로 소통 구조가 없다보니까, 대화 단절로 진실이 왜곡되고 있죠. 진작부터 도정과 시정이 중재자 역할을 했어야 했습니다. 승리자와 패배자를 낳는 게 아닌 포용하고 감싸는 노력이 절실하죠.”

윤 교수는 이번 도정에 기대를 건다. 갈등의 합의점을 이끌기 위해, 보다 많은 주민들의 의견을 수렴해달라는 것. “해군기지를 반대하는 주민들이라 해서 경제나 안보를 생각하지 않는 게 아니고 오히려 더 걱정이 되어서 그러는 것이잖아요. 장 밖에서 논의하지 말고 무엇이 경제를 살리는 길인지, 동북아 평화를 위한 길인지 허심탄회하게 이야기할 기회가 있어야죠. 현 시점에서 제주해군기지를 추진해야 하는지 근본적인 질문을 던지는 작업이 필요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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